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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 일본 반(反)기지운동으로부터 배운다 ③] “군형법 마구잡이 적용 안된다”

‘자위대 통신선 절단 무죄’ 판결 이끌어낸 에니와 사건

지난 5월 평택미군기지 이전을 둘러싼 공방전의 한가운데 군형법 적용 문제가 불거진 적이 있다. 당시 윤광웅 국방장관은 시위를 막다가 부상한 장병이 입원한 국군병원을 위로방문하면서, ‘군사시설보호구역을 침범해 훼손하거나 폭력행위를 할 경우 군형법에 의거해 처벌하는 등 강력히 대처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군형법상의 ‘군용시설 등 손괴’, ‘초병 폭행’ 조항을 적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국가와 국민의 생명을 보호하는 업무를 띠고 있는 군대’가 이유없이 훼손당하거나 대낮에 민간인에게 군인이 폭행당하는 사태는 바람직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이유였다.

물론 군용시설이 이유 없이 훼손당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그러나 왜 민간인이 군사시설물을 훼손하기에 이르렀는가에 대한 일언반구도 없이, ‘국가와 국민의 생명을 보호하는 임무를 띤 군대’를 지휘하는 국방부 장관이 뱉은 말을 놓고서는 말이 많았다.

평화롭게 농사짓던 평택 팽성 황새울 들판에서 군인들은 철조망을 치고 군사훈련을 실시했다.<출처; 평화바람>

▲ 평화롭게 농사짓던 평택 팽성 황새울 들판에서 군인들은 철조망을 치고 군사훈련을 실시했다.<출처; 평화바람>



농민 노자키 형제, 군사 훈련용 통신선 절단

일본 홋카이도의 에니와(惠庭)라는 마을(지금은 에니와 시)에 노자키(野崎)라는 형제가 있었다. 우리나라의 무주 구천동만큼이나 선선한 곳에 목초지도 많고 하니 목장을 하면서 지내면 딱 좋은 곳이 바로 에니와 마을이라고 한다. 참고로 에니와라는 지명은 홋카이도 선주민인 아이누족의 말로 ‘뾰족한 산’이라는 뜻인데, 에니와라는 곳에 산이 하나 있어 그 산의 이름에서 지명이 유래하였다.

그런데 그런 평화로운 곳에서 젖소를 키워 낙농업을 하면서 살던 노자키 형제에게 고민거리가 하나 생겼다. 육상자위대의 포탄연습장이 옮겨 오면서 밤낮없이 쏘아대는 포탄소리 때문에 젖소의 젖이 안 나오게 된 것이다. 유순한 노자키 형제를 비롯한 포탄연습장 주변의 마쓰시마 마을 낙농가들이 수차례에 걸쳐 평화적인 방법으로 자위대 측에 연습 중지 등의 대책을 강구해주도록 요청한 것은 물론이다. 그러나 자위대측은 이에 묵묵부답으로 일관했다. 이에 노자키 형제를 필두로 격분한 주민들이 1962년 12월 11일과 12일 이틀간에 걸쳐 항의의 의미로 자위대의 연습용 통신선을 절단해버린 사건이 발생하였다.

이 사건에 대해 일본 검찰은 이러한 행위가 자위대법 제121조 군용시설 손괴죄에 해당한다며 기소했다. 그러나 노자키 형제는 군용시설 손괴죄를 적용하기에 앞서 자위대가 과연 헌법에 적합한 존재인지, 군사력을 금지한 일본헌법의 정신에 맞는 것인지 따져보라고 주장했다. 이를 위하여 군사전문가, 헌법연구자 등을 증인으로 신청해 자위대에 대한 실태심리를 주장하기도 하였다.

무죄 선고한 일본의 지방법원 “손괴죄 아니다”

결국 자위대에 대한 실태심리가 인정되어 본격적인 헌법재판이 시작되었다. 사실 그때까지만 해도 보수적인 법원의 경향에 비추어 피고인은 물론 변호인단도 이렇다 할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그런데 뜻밖에도 홋카이도 지방재판소는 노자키 형제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자위대법 제121조에 따르면 ‘무기, 탄약, 항공기, 그 밖의 방위에 필요한 물건을 훼손할 것’을 범죄구성요건으로 하고 있는데, 연습용 통신선은 그 밖의 방위에 필요한 물건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따라서 자위대법 121조 군용시설 손괴죄를 마구잡이식으로 적용하는 것은 죄형법정주의에도 반한다고 하였다.
이러한 1심판결에 대하여 검찰이 항소를 포기함으로서 사건은 노자키 형제의 무죄로 일단락되었다. 검찰로서는 1심판결에서 패소한 셈이었지만 항소를 포기했다. 판결문에서 자위대가 위헌인지 여부에 대해서는 언급을 피하고 있었고, 2심에 가서 자위대의 위헌 여부가 본격적으로 논란이 되면 정치적으로 부담이 되기 때문에 그 정도 선에서 수위를 조절한 셈이다.

일본은 헌법에서 명시적으로 '평화주의'를 선언하며 '군대' 보유를 금지하고 있지만 자위대는 군대가 아니고 무엇인가?<출처; 평화네트워크>

▲ 일본은 헌법에서 명시적으로 '평화주의'를 선언하며 '군대' 보유를 금지하고 있지만 자위대는 군대가 아니고 무엇인가?<출처; 평화네트워크>



한국에선 민간인에게 군법 적용?

비록 자위대의 위헌성에 대한 본격적인 헌법 판단이 회피되어 노자키 형제 등 평화애호세력의 입장에서 보면 불만족스럽기 짝이 없는 판결이었지만, 에니와 사건은 우리에게도 군형법 적용과 관련한 많은 문제를 생각하게 한다. 일본에는 자위대의 존재가 논란이 되고 군대를 금지하고 있기 때문에 군사법원이 없다. 그래서 민간인을 군사법원에서 재판하는 일 따위는 발생하지 않는다. 반면 우리나라의 군관계자는 서슴없이 ‘철조망을 뚫고 군사시설보호구역으로 들어오는 시위대를 즉시 체포해 군용시설물 손괴혐의로 조사하고 위법사실이 명백하면 군검찰에 이첩, 군사재판을 받도록 할 계획’이리고 설명한 바 있다.

평택주민들은 수차례에 걸친 평화적인 시위를 통해 대추리·도두리에서 농사지으면서 평화롭게 살기를 애원하다시피 했다. 그런데도 정부는 이렇다 할 대응책을 강구하지 않았다. 일반 국민들에게는 어딘가에 들어서야 할 미군기지인데 대추리·도두리 주민들이 자기들 편하자고 자기 동네에 미군부대가 못 들어오게 과격한 시위만 일삼고 있다는 식의, 일종의 님비현상 정도로 비춰지게 했다. 결국 한미관계와 그로부터 파생되는, 이른바 안보를 위하여 ‘국가와 국민의 생명을 보호하는 임무를 띠고 있는 군대’를 동원해 철조망을 치고 군대를 배치할 수밖에 없으며 이를 침범하면 군사시설물 손괴라는 식이었다.

헌법 상 평화주의에 반하는 군형법 적용 논란

우리 헌법은 군사법원에 대해서도 규정하고 있고 군형법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군사관련 법제는 매우 엄격하고 제한적으로 적용되어야 한다. 국가긴급시의 각종 예외 법규들은 사실 헌법의 존재자체를 부정할 수 있는 것이고 평화주의 원리에도 반하기 때문이다.

비록 군형법 적용 논란은 현실화되지 않았지만 지난 5월의 군형법 적용 논란을 거울삼아 다시 한 번 생각해보아야 할 것이 있다. 첫째, 주민들이 주장하는 바의 본지에 답하기에 앞서 너무 안이하게 군형법 적용 발상에 이른 것은 아닌지, 그러한 발상법이 우리 사회에 만연해 있는 반평화주의적 사고에 뿌리를 두고 있는 것은 아닌지. 둘째, 평택의 미군기지 확장 이전이 과연 국가와 국민의 생명을 보호하게 될 것인지, 아니면 오히려 우리 의지와 무관하게 전쟁에 휩쓸리게 될 도화선이 될 것인지.

우리 헌법의 평화주의 원리는 단순한 ‘선언’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법집행과정의 근본원리이기도 하다는 자명한 사실이 다시금 상기되는 때이다.
덧붙임

이경주 님은 인하대 법학교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