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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원인 인터뷰

‘얼굴들’에서 희망을 발견하는

강소영 님을 만났어요

우연히 <얼굴들>이라는 공간이 있다는 소식을 듣게 됐어요. 사진으로 엿보다가 직접 가보고 싶은 마음에 후원인 인터뷰를 요청드려 핑계를 만들었습니다. “단지 책이 아니라 얼굴을, 어떤 얼굴만이 아니라 그 모든 얼굴들을” 만나고 모으고 연결하는 기획으로 한창 바쁘신 강소영 님을 만났습니다. 지면에는 옮길 수 없는 오디오 사운드도 너무 멋진 공간이었답니다.

안녕하세요. 자기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인권운동사랑방 후원인이고, 마포구 연남동에서 ‘얼굴들’이라는 이름의 출판사이자 공간을 운영하고 있는 강소영입니다.

 

인생에서 책이 중요해진 계기가 있나요?

십 대 때 소설을 쓰고 싶었어요. 독서인으로서의 정점은 그때인데, 나오는 한국 단편소설들을 거의 다 읽을 정도였어요. 작가가 되고 싶었는데 그러려면 더 많이 알고 접해봐야 한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관심이 사방팔방 뻗치다가 영화를 좋아하게 돼서 영화 쪽 일을 하게 됐고요. 그렇게 7년 정도 일하다가 출판 일로 오게 됐어요. 오래전 읽은 책들이 절 이끌어준 것도 같아요.

 

그러다가 어떻게 공간 <얼굴들>을 열게 됐나요?

출판노동자로 꽤 일했으니 책 만드는 일을 좋아한다고 여긴 분들은 제가 창업을 할 거라 생각하셨는데, 저는 조금 다르게 독자로서 사는 게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좋은 책들이 너무나 많이 쏟아지는데 저조차 독자로서 충실히 읽어내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난 좀 늙지 않았나 싶어 은퇴도 운운하다가(웃음) 다시 해보자며 시작하게 된 거예요. 출판사를 만들고 키우는 과정도 의미가 있지만 책 너머에 있는 것들을 다루는 일을 해보고 싶었어요. 평소의 지향을 더 적극적으로 실현할 수 있는 걸 해야겠다는 생각도 있었고요. 출판사만 운영하는 거라면 공간이 특별히 필요하지 않은데 제가 줄 것이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도 있었어요. 저 한 사람의 몸으로 낼 수 있는 시간은 한정적인데 공간이 있다면 더 줄 수 있는 게 생기지 않을까, 그리고 재미난 것들, 필요한 것들을 만들어갈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공간 활동이 더 많아요. 출판사를 하는지 모르는 분들도 많고요. 진(Zine)의 형태로 독립출판물을 만들어서 유통하는 실험도 시작했어요.

 

<얼굴들>이라는 이름은 어떤 뜻을 담고 있을까요?

‘얼굴’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 아주 많아요. 존재의 낯뿐 아니라 어떤 면모를 이야기할 때도 쓰지요. 서체도 타입페이스(typeface)고, LP판도 페이스A,B로 양면을 표기하기도 해요. 낯을 의미할 때도 인간만이 아니라 비인간의 얼굴도 있고요. 책 너머의 이야기를 할 때 나는 무엇에 관심이 있을까 생각해보니 그게 얼굴들이었어요. 제가 활동에 참여할 때도 거기 있는 얼굴들 때문에 동력을 얻는 것 같거든요. 인스타그램 계정 아이디를 페이시즈 북스(face s.books)라고 정했는데, 페이스북을 따라 한 게 아니라(웃음) 라임이라고 할까요, 말재미가 있어요. 얼굴, 그러니까 단지 책이 아니라 어떤 존재에 관심을 갖고 싶다는 의미가 담겨 있어요. 얼굴들 웹페이지(faces-book.com)에서 ‘faces’(페이시즈)라는 메뉴가 있어요. 많은 책에 ‘얼굴’이 나오는데 그걸 수집해보고 싶더라고요. ‘얼굴’이라는 단어가 들어간 문구를 사람들이 적으면 거기에 쌓여요. 진(Zine)을 만드는 것도 누구에게 청탁할지만 정하고, 얼굴이라 할 수 있는 아무거나 써도 된다, 다만 지금 가장 쓰고 싶은 절실한 얘기를 써달라는 조건으로 청탁해요. 뭘 주실지 모르지만 모이면 그게 또 이야기가, ‘얼굴-들’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 진Zine 시리즈 '얼굴_들'의 시즌1. 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으로 남웅 미술비평가 겸 활동가, 타리 활동가, 해초 항해자, 서제인 번역가의 얼굴.

 

공간에서 어떤 활동들이 있었나요?

<얼굴들>은 서점으로도 등록돼있어요. 그래서 책을 판매할 수 있는데 책을 꽂아놓고 독자들을 기다리는 방식이 아니라 관련 행사나 모임에 따라 큐레이션을 몇 종의 책만 판매하는 방식으로 운영하고 있어요. 저 자신도 쌓여가는 책들을 쫓아가지 못하고 있어서 한 권 한 권을 천천히 깊이 읽을 수 있게 소개하고 싶어요. 지금까지의 큐레이션 중에는 정혜윤 PD와 함께 한 작가 큐레이션, 팔레스타인평화연대와 함께한 이슈 큐레이션이 있었어요. 특히 팔레스타인평화연대와 함께한 큐레이션이 기억에 많이 남아요. 여러 행사를 하며 시위를 갈 때마다 많이 봤던 얼굴들을 더욱 잘 알게 되는 기회가 되었어요. 집회에서 만나지만 흩어져 살아가는, 하지만 굉장히 관심이 많은 연대자들을 근거리에서 만난 거죠. 여기에 모이면 서로 말을 걸게 돼요. 사람들이 한 마디씩 꺼내는 말들이 연결되면서 예상치 못한 흐름이 만들어지거든요. 지금은 성소수자 인권과 팔레스타인 평화운동 간 연대를 이야기하는 퀴어팔레스타인연대QK48과 연속 세미나를 하고 있어요. 세미나는 접근성이 중요하지만, 오프라인-면대면으로 만났을 때 생기는 특별함이 있다고 생각해요. 그 날 모인 얼굴들에 따라 길이 다르게 나거든요. 14일에는 김진숙 지도위원이 오시는데 마음이 반짝반짝해지는 신나는 일이에요. 또, 페미니즘 제2물결 여성 시인 탐독회나 애거서 크리스티 추리소설 읽기 모임도 하는데 이렇게 문학에 충실한 모임들도 계속 하고 싶어요. 

 

 

 

 

 

 

 

◀ 퀴어팔레스타인연대QK48과 함께 한 세미나인 <집단학살의 얼굴들>. 활동가 화, 보영, 타리가 진행했다.

 

작년 11월 공간을 열고 정말 많은 기획이 있었는데 기억에 남는 자리를 하나 꼽는다면 무엇일까요?

12.29 무안공항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1주기를 맞으면서 ‘(침묵)하지 않는 독서 클럽’을 열었어요. 기획, 편집했던 책 <사고는 없다>*를 중심으로 <고통 구경하는 사회>, <먼지가 가라앉은 뒤>까지 세 종의 책 가운데 하나 이상을 들고 참석하는 모임이었어요. 다른 참사와 달리 12.29 참사는 관련 행사들이 별로 보이지 않았어요. 사람들의 관심이 떨어지고 너무 조용하게 덮이거나 지나가는 것 같았어요. 그래서 ‘침묵독서클럽’을 운영하는 김지은 님에게 ‘(침묵)하지 않는 독서 클럽’을 열어보자고 제안드렸어요. 거기서 참사와 연관된 책들을 골라놓고, 우리가 목격자이자 동시대인으로서 참사에 대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책을 매개로 이야기 나누는 시간을 가져보기로 했어요. 예전에 파주 용주골 집회에서 봤던 <그레이존>**이 생각나서 공동체 상영회도 겸했고요. SNS에 올린 홍보 피드를 보고 참사 1주기를 의미 있게 시간을 보내고 싶은 젊은 독자들이 많이 왔어요. 유명인이 오는 행사도 아니고 특정 책을 홍보하는 행사도 아닌데 같이 모여서 낭독도 하고 메모도 나누며 영화도 같이 보는 시간이 무척 기억에 남아요. 

* 사고의 증가가 어떻게 사회의 구조적 불평등과 연관되는지를 담고 있는 저널리스트 제시 싱어의 책.

** 세월호 참사 10주기에 제작된 다큐멘터리 3편 중 하나. 참사 현장 가까이에 있었던 언론인의 이야기.

 

책을 편집하는 것과 공간에서 책을 소개하는 일은 어떻게 같거나 다른가요?

일차적으로는 내 책이냐 남의 책이냐의 차이가 있어요. 남의 책으로 이렇게까지 하는 건 정말 하고 싶어서 하는 일이에요. 기획부터 홍보와 모객, 현장 진행까지 다 하니까 에너지와 시간이 많이 들어요. 대관이면 공간을 빌려주고 그에 대한 비용을 받으면 되고 행사도 무리하지 않는 한에서 이벤트성으로 열면 되는데 제가 지금 하는 방식을 효율과는 거리가 있죠. 매번 상업적인 선택을 하고 그 안에서 좋은 결과를 내도 좋겠지만 그보다는 이런 과정에서 그 책에 필요한 무언가를 하고 싶다는 열의를 지키고 싶어요. 최대한 버티면서 길을 찾되, 허투루 하고 싶지 않은 마음을 지키고 싶어요. 출판사로서의 기능에 충실하려면 제 책에 시간을 좀 더 쏟아야겠지만 아무래도 다른 이들과의 협업을 우선시하게 돼요. 저만의 일들이 후순위로 밀리는 부분은 균형을 찾아가야겠죠. 일만 많이 하고 수익이 없는 것 같으니 걱정하는 분들이 있는데 제 목표는 걱정을 안 끼칠 정도로 공간을 운영하게 되는 거예요.

▲ 팔레스타인평화연대 큐레이션 당시, 공간에 팔레스타인 관련 책을 전시, 판매했다.

 

사회운동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있을까요?

제가 조금 더 나은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는 과정이에요. 그럴 때 돌봄의 감각과 세상에 대한 관심을 빼놓을 수 없어요. 운동에 동참하는 존재들에 대한 관심이 저를 이끄는 것 같아요. 어떤 대의나 슬로건보다 동참하는 사람들을 믿고 더 갈 수 있게 되고, 그런 사람들이 늘어나는 만큼 내 인생도 나아지는 것 같아요. 사람들이 많아지면 누군가 쉬어갈 수도 있고 누가 대신해 줄 수도 있다는 믿음이 지지가 돼요. 그걸 발견할 때 세상에 대한 희망을 갖게 돼요. 내란으로 시위가 연일 이어질 때 그 시위를 만드느라 몸을 쓰는 활동가들이 걱정되어 시위에 나갔어요. 얼굴들 보면 사실 힘이 나잖아요. 뭐라도 나눠 먹고 웃고 오면 그걸로 좋은 시간이 되고요. 팔레스타인 시위도 나를 위해 나간다는 느낌이 있어요. 세상에 진짜 이게 말이 되나, 모두가 다 지켜보는데 저런 일들이 일어날 수 있나, 다 보고도 학살을 멈추지 못한다니. 그럴 때 집회 가서 구호도 외치고 브리핑 들으며 같이 욕을 하고 눈물을 훔치고 안부를 묻고 하면 그래도 해방될 수 있지 않을까, 긴 싸움을 이어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가능성을 얻어와요. 새만금신공항 건설을 막기 위해 전주에서 서울까지 도보 행진했던 <새,사람 행진>도 너무 멋진 여정이었어요. 어느 구간에서 꼭 같이 걸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 후 팽팽문화제도 가고 새만금 신공항 취소 판결 때 법원 앞에도 갔죠. 승소 소식을 전하려고 현장을 비디오로 찍었는데 찍다가 엉엉 제가 우는 소리가 같이 녹음됐어요.(웃음) 다들 포기했을 때, 또 지는구나 싶을 때 우리가 이 작은 승리를 함께 보는 느낌이 너무 좋았어요.

처음에는 우왕좌왕했던 시기도 있었어요. 일어나는 많은 일을 도저히 다 따라갈 수 없고 후원할 잔고도 없는데, 이렇게 여기저기 가는 게 도움이 되는지 모르겠고. 지금은 분명해졌어요. 다 갈 순 없지만 갈 수 있을 때 가고 싶을 때 가는 건 분명 좋은 일이고 필요한 일이다. 이런 확신이 생겨서 지금 즐겁게 하고 있어요.

 

체제전환운동포럼도 오셨죠.

매년 갔는데 이번에는 많이 못 있고 세션 두 개만 듣고 왔어요. 세션 하나하나가 지금 다뤄야 할 의제를 체제전환의 관점에서 모아낸 자리 같아요. 아쉬움이 있다면 세션 안에 중요한 이야기가 많은데 너무 시간이 부족한 것. 모인 사람들의 열기를 생각하면 한 주제를 가지고도 하루종일 얘기할 수 있을 텐데 시간에 쫓겨서 이야기하는 게 너무 아쉬웠어요. 어쩌면 그때 던져진 것들을 펼치는 것이 그 다음의 몫인가 싶어요. <얼굴들>에서 열리는 퀴어팔레스타인연대QK48 세미나를 홍보하면서 QK48 보람 님의 포럼 발표 자료 첫 사진을 띄우기도 했어요. 또 다른 누군가는 세션 하나를 확대해 책을 만들 수도 있을 테고, 기획자나 출판, 언론에서 일하는 분들한테는 박람회처럼 모아 보기 좋은 자리였던 것 같아요. 

 

인권운동사랑방은 언제부터 후원하셨어요?

언제부터인지 정확히 기억이 안 나요. 30주년 때 보내준 사랑방 수건은 잘 쓰고 있어요. 후원인 인터뷰 연락왔을 때 내가 사랑방을 너무 모른다는 생각도 했는데 제가 갖고 있는 최초의 이미지가 이어지는 것 같아요. 여기저기에 스며있는, 많은 일에 가담하는 단체랄까. 유지하기 버거울까봐 신중히 후원을 늘려가던 시점에 시작했을 거예요. 제가 관심이 짧고 다 쫓지 못한다고 생각할 때 사랑방은 내가 손 닿지 않는 곳들을 살펴줄 거라는 마음에 보험 들 듯 시작했어요. 내가 진정성을 가지고 활동에 참여하는 것인지 죄책감이 들 때도 있거든요. 객관화해서 보면 건강하지 못한 감정이죠. 그런 마음이 떠올라 괴로울 때 인권운동사랑방을 쫓아가다 보면 내가 보지 못하고 내 손이 미치지 못하는 곳에도 닿지 않을까 하는 기대였어요. 제가 사랑방을 잘 팔로우(follow)하지는 못했지만 알게 모르게 사랑방 활동이었던 것이 많더라고요. 그러고 보면 팔로우하고 있던 거죠.

 

인권운동사랑방 활동을 알아보기가 쉽지 않죠. 어떻게 잘 알리면 좋을까요?

티를 좀 내면 좋겠어요. 다른 후원인 분들도 비슷할 것 같아요. 알고 보면 되게 많은 일을 했는데 찾아보기 전에는 잘 알기가 어려워요. 나서지 않으니까. 인터뷰 직전에 찾아보니 운동원칙선언에 명망을 경계하는 내용이 있던데 그래서 드러내지 않나 보다 싶기도 한데요. 사랑방을 드러낸다기보다 여러 운동이 연결돼있고 사랑방이 그걸 함께 한다는 걸 보여주는 작업으로 접근해도 좋을 것 같아요. 기후정의운동도, 체제전환운동도 굉장히 스케일이 큰 도전인데 가장 인상적인 건 그 운동을 정말 많은 단체에서 참여할 수 있게 하는 거예요. 그게 중요한 만큼 좀 드러나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제가 영화 일을 할 때 마케팅도 같이 했었어요. ‘기본이 있다면, 흥해 보여야 한다.’ 이게 대세구나, 이거 하면 좋겠구나, 이게 옳구나, 이거 나도 해봐야겠다…고 생각이 들게. 그리고 중요한 건 어떤 일의 ‘후’예요. 대부분 준비할 때 홍보 에너지를 싹 쏟아버리는데 끝나고 나서 그게 어떤 결과를 냈는지, 몇 명이 왔다든가 어떤 이야기들이 있었다거나 어떻게 이어보고 싶다거나 하는 후기도 중요해요.

 

인권운동사랑방 활동가들에게 건네고 싶은 말이 있다면 들려주세요.

저는 안식년을 가거나 돌아오거나 시작한다는 활동가들을 보는 게 좋더라고요. 운동을 추동하기 위해 내내 몰입할 수 없으니까 누군가 그 자리를 대신해 줄 수도 있고 잠깐 비울 수도 있는, 안도와 믿음을 확인하는 시간이 안식년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 사랑방이 운동 사회에서 일찍 안식년을 시작했는데 정말 중요한 걸 시작했다고 생각해요. 다른 단체들에도 안식년이 많아지는 게 중요한 일 같고요.

마지막으로 전하고 싶은 말은… ‘방’을 괄호 친 다음에 말하자면 인권, 운동, 사랑 중 제일은 무엇일까요?(웃음)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의 제일은 사랑이라’라는 유명한 성경 구절이 있잖아요. 저는 이 구절이 믿음, 소망, 사랑이 다 중요하다는 의미라는 점에 주목해요. 인권도 운동도 사랑도 전부 다 중요하다. 인권을 위해, 운동을 위해, 사랑을 위해, 쉬엄쉬엄, 잘 지내시길 바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