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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논평] 개발과 국가폭력에 짓밟힌 철거민

'지상에 방 한 칸' 몸과 마음을 누일 공간을 지키기 위해 망루에 올라 54일간 저항하던 오산 수청동 철거민들이 경찰특공대에 의해 지난 8일 강제 진압됐다. 경찰은 법 집행을 명분으로 엄청난 물리력을 앞세워 철거민들의 처절한 외침을 무참히 짓밟았고 서민의 주거권 실현을 위해 만들어진 대한주택공사는 뒷짐 지고 철거민의 마지막 보금자리마저 빼앗았다.

'인권경찰'로 거듭나겠다는 경찰의 의지는 허울 좋은 구호일 뿐 가난한 사람들을 향해서는 예나 지금이나 합법을 가장한 '국가폭력'을 행사하고 있다. 이날 경찰은 철거민에 대한 영장을 집행한다며 경찰병력 2400여명, 경찰특공대 50명, 70미터에 이르는 대형 크레인 2대, 소방차 13대 등을 동원했다. 철거민에 대한 단전·단수를 비롯해 철제 새총을 제작하고 골프공을 날리는 등 철거민들의 생존을 극단으로 몰아붙인 것도 '법의 이름'으로 폭력을 독점한 경찰이었다.

한국 사회에서 재개발이 추진되는 경로는 어찌 보면 주거권이 가장 취약한 사람들을 더욱 열악한 주거공간으로 내쫓는 모순적인 결과를 낳았다. 청계천 주변의 판자촌에 살던 사람이 서울외곽의 달동네로 내몰리고 그 곳이 또 하나둘 재개발될 때마다 가난한 사람들은 비닐하우스촌이나 쪽방 등 '집 아닌 집'으로 쫓겨갔다. 주거권은 주택에 대한 비용을 지불할 수 있는 사람이 쾌적하게 살 권리에서 출발하는 것이 아니라 집 없는 사람들이 집을 보장받고 집에서 사는 사람들이 부당하게 내쫓기지 않을 권리에서 출발한다는 기본을 다시금 분명히 해야 한다.

오산 수청동의 택지개발을 맡았던 대한주택공사는 국민의 쾌적한 주거생활을 위해 주택을 공급하고 관리하는 역할을 맡은 공공기관이다. 그러나 이번 사태는 대한주택공사가 과연 지역주민들의 주거권 실현이라는 목적에 걸맞는 곳인지 의심하게 만든다. 철거민을 내쫓고 다듬은 땅에 솟아오를 휘황찬란한 아파트가 철거민들의 것이 될 수 없는 현실은 누구나 알고 있으면서도 아무도 문제삼지 않는 처절한 진실이다.

유엔 사회권위원회는 1994년과 1999년 두 차례에 걸친 한국정부보고서의 심의를 마치며 주거권 및 강제철거와 관해 심각한 우려를 표명한 바 있다. 이번 사태는 강제철거를 금지하고 철거민에 대한 보상 및 임시주거시설을 제공하라는 유엔 사회권위원회의 권고를 이행하기는커녕, 국가가 앞장서서 강제철거를 자행하는 인권침해자의 면모를 여지없이 보여주었다.

철거민에게 철거란 지붕만을 빼앗기는 것이 아니다. 아이들이 기억하는 고향을, 서로의 마음을 나누었던 이웃을, 삶을 영위하던 터전을 빼앗기는 것이다. 가난한 사람들의 주거권이 '개발을 빙자한 이윤놀음'과 '공간을 둘러싼 국가폭력'의 양날에 유린되는 현실을 언제까지 방치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