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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집회 및 시위의 자유, 현 주소를 진단한다-①

“곳곳이 집회금지구역, 집회 할 곳이 없다”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집회․시위의 자유를 보장받고 있지 못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대사관 근처나 주요도로에서는 집회를 열 수가 없어 개발된 1인 시위. 실제로는 집회를 열지도 않으면서 관변단체․이익단체들이 허위로 장기 집회 신고를 내 어쩔 수없이 집회 장소를 바꾸는 사람들.

주위를 둘러보면 자신이 바라는 집회․시위의 자유를 누리지 못하는 사람들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소수집단이 자신들의 권익과 주장을 지키기 위해 보장돼야 할 집회와 시위에 대한 자유가 전반적으로 심각하게 위협받고 있는 것이다. 이런 우려의 목소리에도 불구하고 경찰․검찰은 “도심에서는 대규모 집회를 금지해야 한다”, “1인 시위는 변칙적 집회로 처벌해야 한다” 등의 발언조차 서슴지 않고 있다.

이에 <인권하루소식>은 현행 집회․시위의 자유에 관한 현 주소를 돌아보고 현행법상의 문제점과 개선 방향 등을 살펴보고자 한다. (편집자 주)


대사관 주변=집회금지구역

올해 들어 화제를 집중시킨 시위 방법은 바로 1인 시위다. 참여연대가 종로 국세청 앞에서 1인 시위를 벌이게 된 이유 중 하나는 국세청 건물에 온두라스 대사관이 있기 때문이다. 국세청이 입주해있는 삼성 타워는 작년에 생긴 건물로 주변에 비교적 넓은 공간이 있어 사람들에게 ‘시위의 새로운 메카’로 자리를 잡던 중이었다. 그러나 이를 감지한 삼성 측은 재빠르게 움직여 온두라스 대사관을 ‘유치’하는데 성공했고, 건물 주변에서 열리던 대중 집회는
이후로 모습을 감췄다.

현행 집회및시위에관한법률(아래 집시법)에 규정돼있는 ‘외국의 외교기관 1백미터 이내 집회․시위 금지’조항은 대표적인 집시법 독소조항으로 꼽히고 있다. 한때 종로경찰서장이 “1인 시위는 법의 틈새를 교묘하게 이용한 불법 행위”라고 비난한 적이 있었는데, 재벌들이 벌이고 있는 대사관 유치 활동이야말로 비난받아야 할 대상이다. 이러한 재벌들의 행태는 저절로 혀끝을 차게 만든다. 삼성생명 본사에는 엘살바도르 대사관이 있고, 세종로 현대상선 건물에는 파나마 대사관이 작년 6월에 들어갔으며, 동화면세점 빌딩에는 99년부터 브루나이 대사관이 터를 잡았다. 재벌들은 이같이 제3세계 국가들의 대사관을 자신들의 건물에 유치하면서 보증금․월세를 깎아주고, 심지어 멀쩡히 업무를 보고 있는 사람들에게 “대사관을 옮길 의향이 없냐”며 대사관 이전 제의를 하기도 한다.

이러한 재벌들의 횡포로 인해 정작 재벌들을 상대로 자신들의 요구를 외치는 사람들은 재벌 건물 근처에도 갈 수가 없었다. 실제로 서울 남대문경찰서는 엘살바도르 대사관 입주 후 삼성본관 앞에서 집회를 벌여온 삼성해고자 복직투쟁위(위원장 김성환) 앞으로 “이미 신청한 삼성생명 사옥 앞 집회 7건을 모두 불허한다”고 통보했다.

요즘은 삼성본관과는 2백여미터 이상 벗어난 곳에서 ‘삼성 복직’을 요구하는 집회를 열고있는 삼성해복투 관계자는 기가 막히다는 표정으로 말한다. “역시 삼성이 하면 다르더군요, 합법적으로 벌이고 있던 집회를 하루 아침에 이런 식으로 막아버리다니.”

이에 대해 민주노총 권두섭 법규차장은 “노동 현안에 해당 사업장이나 본사가 위치한 건물에서 집회가 열리기 마련인데 건물 소유주인 사업주가 집회를 막기 위해 대사관을 입주시킨다면 이는 헌법상 보장된 기본권을 박탈시킬 수 있는 여지를 주고 있다”고 주장한다.


‘주요 도로’에서 집회하지마!

올해 5월 민주노총은 노동절 111주년 기념대회를 광화문에서 치르고자 했다. 그러나 광화문 4거리가 ‘주요도로’라는 이유로 집회신고에 대해 금지통고를 받아야 했다. 현행 집시법 상 “대통령령이 정하는 주요도로에서의 집회 및 시위에 대해 교통소통을 위하여 필요하다고 인정할 때에는 이를 금지하거나 제한할 수 있다”는 규정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과연 서울에는 얼마나 많은 주요도로가 있을까? 집시법 시행령에 나와있는 주요도로를 살펴보면 ‘경인로-마포로-종로-왕산로-망우로’를 2번 주요도로로 지정하고 있다. 2번 주요도로는 오류동에서 시작해 영등포역-여의도-광화문4거리-종로-청량리-상봉동-망우리까지 서울을 관통하는 도로다. 이런 식의 도로가 서울에만 1번에서 15번까지 주요도로로 지정돼있다. 사실상 서울시내 도로 대부분이 주요도로로 지정돼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경찰이 맘만 먹으면 집회 금지 통고를 할 수 있다는 얘기다. 그런데 그것도 모자라 지난 7월 검찰 당국은 “4대 문안 도심지역에서 집회참가 인원수를 5백명으로 제한하는 집시법 개정을 추진하겠다”고 발표했다.

한편, 교통소통을 이유만으로 집회․시위의 자유를 금지해서는 안 된다는 사법부의 판례가 있다. 서울고등법원은 지난 98년 실업대책 범국민본부가 주최한 집회에 대해 경찰이 “주요 도로 앞 시위는 교통장애가 예상되어 집시법에 의거 금지대상”이라고 통보한 사건에 대해 “단순히 교통소통에 지장을 초래할 우려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시위 자체를 원천적으로 금지한 피고의 사건 처분은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집회의 자유에 대한 과도한 제한으로 위법한 조치”(선고98누11290)라고 판결했다.

누구나 보장받아야 할 기본권이 오히려 약자에게 불평등하게 적용되고 있는 현실. 대사관 주변 집회 금지로, 주요도로 집회 금지로 사회적 약자들의 외침은 점점 더 외딴 곳으로 내몰리고 있다. 집시법 개정에 대한 논의가 시급히 요구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