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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가의 편지

[자원활동가 일기] 푸른교실 공부방에서는 어떤 일이...

여름이 끝나갈 무렵 교육실에서 예전부터 계획해 왔던 지역공부방 인권교육을 시작한다는 소식을 듣고, 지난번 ‘어린이 인권 캠프’에 참가했던 경력을 무기로 겁도 없이 교육실 자원활동을 시작했다.
공부방에서의 인권교육활동을 처음 시작하는 만큼 두 명의 상임활동가와 다섯 명의 자원 활동가가 열정을 가지고 매주 월요일에 모여 인권교육 프로그램을 준비했다.
공부방은 현재 공부방 교사를 하며 인권교육 프로그램도 함께 준비하고 있는 자원활동가가 몇 곳을 추천해 주어, 청량리에 있는 푸른교실 공부방에서 교육을 하기로 했다. 우리가 대상으로 하는 아이들은 초등학교 4-6학년 아이들인데 대략 16명 정도 된다. 이 곳 아이들은 대부분 한 부모나 할머니, 할아버지와 함께 살고 있고 경제적으로도 어려운 가정이 대부분이라고 한다.
한달 반 정도의 준비기간이 지나고 드디어 공부방 아이들을 만나게 되었다. 전체 프로그램은 매주 1회 두 시간씩 10회로 계획되어 있었다. 첫 날은 아이들과 친해지기 위한 활동들을 준비했다. 짧은 시간이라도 아이들의 얼굴과 이름을 익히고 앞으로 즐겁게 인권교육을 함께 하기 위한 사전 작업이라고 할까. 서로 인사를 나눌 때만 해도 아이들은 낯선 사람에게 보이는 약간의 호기심에 눈이 반짝였다. 그러나 본격적인 교육 활동이 시작되자 어려움이 이만 저만이 아니었다. 모두 일어나서 하는 게임이었는데 반 이상의 아이들은 엉덩이도 떼지 않고 ‘하기 싫다’, ‘재미없을 거 같다’며 일어나지 않고, 몇몇 아이들은 서로 장난치느라 방안을 어지러이 돌아다녔다. 이렇게 아이들과 두어 시간을 씨름하고 공부방을 나왔다. 첫날은 그야말로 어안이 벙벙한 상태에서 앞으로 이 아이들과 어떻게 함께 공부해야할지 앞이 캄캄했었던 것 같다.
이후에 인권교육 내용이 대폭 수정되었고, 이론적이고 딱딱한 방식보다는 되도록이면 아이들이 직접 참여하면서 몸으로 익힐 수 있고, 무엇보다 아이들과 관련된 문제를 중심으로 프로그램을 준비했다.

두 번째 시간은 ‘차별’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아이들이 직접 차별을 경험해 보도록 하는 프로그램이었다.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좋은 조건이 적힌 카드를 가진 아이들은 신나 했고, 나쁜 조건이 적힌 카드를 가진 아이들은 그것이 자기 자신인 양 화를 내고, 차별을 받는 순간에도 억울해하며 차별의 부당함을 경험했다. 우리는 대부분 작은 차이로부터 차별을 시작하고, 이것이 인간의 권리를 짓밟는 수단이 되기 때문에 아이들에게 인간은 모두 평등하며 존중받아야 하는 존재임을 얘기해 주고 싶었다.
세 번째 시간은 ‘아동 권리 조약’에 관한 전반적인 이해를 위해, 쉽게 풀어 쓴 조약과 그림을 맞춰가며 자신들의 권리에 대해 배웠다. 우리의 아이들 대부분이 그렇지만 이곳의 아이들도 자신의 권리가 무엇인지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는 인권이 모든 인간이 누려야 되는 권리라고 생각하지만 가끔 아이들은 이 인간에서 제외되는 것 같다.
네 번째 시간은 ‘폭력과 왕따’를 주제로, 주어진 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하는 방법, 전쟁, 가정 폭력 등 주위에서 일어나는 폭력문제, 그리고 학교에서 흔히 일어나는 왕따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을 가졌다. 특히 이 곳의 아이들은 폭력이나 욕설이 일상화되어 있고, 폭력적인 상황에도 쉽게 노출될 수 있는 환경에 있는 아이들이라 좀 더 신경이 쓰이는 프로그램이었다. 프로그램 중 아이들이 진짜로 치고 박고 싸우는 에피소드도 잊지 못할 일 중에 하나다. 솔직히 아직도 우리는 아이들의 이런 행동에 뾰족한 묘안을 찾지 못하고 있다.(때려 줄 수도 없고^^) 물론 폭력문제는 공부방 아이들만의 문제는 아니다. 하지만 이 아이들이 폭력으로 길들여지고, 이 방법이 더 이상 용서되지 않을 때 이 아이들이 갈 수 있는 곳은 어디일까? 사회적인 약자의 폭력이나 도덕적 결함은 더더욱 큰 죄가 되는 사회가 아닌가.
다섯 번째 시간에는 ‘환경’을 주제로 핵 폐기물과 대안 에너지에 관련된 문제들을 알아보았는데, 아이들이 핵 발전소와 에너지에 관한 이해가 부족하여 이 부분에 대한 아쉬움이 남았다.
지금까지 반 정도의 교육 활동이 진행되었고, 앞으로 사회복지와 장애, 이주 노동자, 시민?정치적 자유에 관한 프로그램이 진행될 예정이다.

지금까지도 우리는 아이들과 씨름 중이다. 매번 소란스러운 수업에 공부방 선생님은 ‘인권교육 할 때 원래 이렇게 시끄럽나요?’라고 물어보기도 했고, 아이들이 잘못했을 때는 호되게 꾸중하라고도 하셨다. 아직도 아이들 앞에서 말과 행동을 어떻게 해야할지, 잘못했을 때는 어떻게 꾸중을 해야할지 고민이지만, 인권교육은 아이들을 이해하고 함께 호흡하면서 서로의 소중함에 대해 알아 가는 가운데 이루어진다는 걸 조금씩 깨닫는 중이다.

이렇게 프로그램을 진행하다 보니 매주 1회 모이던 횟수가 늘어 이제는 하루가 멀다하고 사랑방에 드나드는 처지가 되었다. 매번 프로그램을 새로 준비하고, 예전에 만들어 놓은 프로그램도 아이들의 특성이나 상황에 따라 계속 수정해야 한다. 한번의 수업을 진행하기 위해서 최소 3주 이상의 시간이 소요된다. 하지만 프로그램이 하나 끝나고 나면 부족함과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사랑방에서는 교육실 회의 시간만 되면 활동가들이 은근히 구박도 하고, 슬슬 자리를 피하기도 한다. 아이들 얘기하랴, 하소연 늘어놓으랴, 프로그램 얘기하랴... 다들 흥분 상태에서 회의가 진행되기 일쑤이기 때문에 좀(?) 시끄러운 게 사실이다. 하지만 이건 교육실 모임에 너무 열의가 넘치기 때문 아니겠는가. (앞으로도 좀 너그러이 봐주시길..^^)

이제 시작에 불과한 인권교육 활동이지만 무엇보다 빈곤한 계층의 아이들에 대한 교육이 절실하다는 생각이 든다. 빈곤층의 아이들은 인권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물론 지역 공부방에서 자체적으로 인권교육을 시도하고 있는 곳들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 경험, 프로그램, 인력의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한다.
현재는 일상적이고 지속적인 인권교육을 위한 프로그램이 거의 전무한 상태라 교육실에서도 새로운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또한 겨울에는 공부방 교사들을 위한 워크샾도 열 계획이다.

지금도 틈만 나면 우리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수환이, 동현이, 수현이, 하경이, 진민이, 정연이... 이 아이들 모두가 꿋꿋이 앞길을 헤쳐나갈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으로 좀 더 화이팅 해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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