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운동사랑방 후원하기

인권하루소식

[김도현의 인권이야기] 로스쿨법안, 이대로는 안 된다

지난 달 27일, '법학전문대학원 설치 운영에 관한 법률안'(아래 로스쿨법안)이 정부안으로서 국회에 제출되었다. 대법원 산하에 설치되어 1년 남짓 활동했던 사법개혁위원회가 지난 연말 최종건의문에서 핵심적인 사법개혁안으로 제안한지 불과 10개월만에 로스쿨 도입은 이제 국회심의라는 마지막 관문을 남겨놓고 있는 셈이다.

사실 로스쿨 도입 논의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이미 김영삼 정권하의 세계화추진위원회로부터 사법개혁의 주요 아젠다로 공론화되기 시작했고 김대중 정부의 새교육공동체위원회에서도 "법학대학원"이라는 이름으로 상당히 구체적인 수준에서 로스쿨 도입이 제안되었었다. 그러나 판사 검사 변호사로 구성되는 기성 법조삼륜은 거의 본능적 차원에서 무조건적인 거부자세를 취하며 강력히 반발해 왔고 로스쿨 도입은 그때마다 좌초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웬일인지 최근의 로스쿨 도입 논의에서는 법조계가 주도적 지위를 차지하고 있고 오히려 법학교수와 시민사회에서 강한 반대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 형편이다. 이렇게 주객이 전도된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그것은 제출된 로스쿨법안이 기존 법조계가 누려온 폐쇄적 특권을 그대로 보존 강화시켜 주고 있으며, 무엇보다 법률가 선발인원의 현상유지를 예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 정권 하의 로스쿨 도입 논의에서 법조계가 완강한 거부 태도를 취했던 이유는 말할 것도 없이 로스쿨이 법률가 대량생산 체제라는 인식에서였다. 로스쿨 제도의 창시국인 미국은 졸업생 대부분이 변호사자격시험을 통과하여 2002년 현재 인구 280명 중 한명의 변호사를 가지는, 세계에서 가장 많은 법률가 숫자를 자랑하는 나라이다. 이에 비해 우리나라는 같은 해 인구 9천여명 중 한명의 변호사를 가지는 법체계 후진국으로서, 법률가들은 사법시험만 합격하면 일거에 소수특권층에 진입하여 장밋빛 인생을 보장받는 데 문제가 없었다. 그럼에도 지난 연말 사법개혁위원회는 로스쿨 입학정원을 시행당시의 사법시험 합격자 수를 기준으로 함이 바람직하다는 내용을 건의문에 포함하여 총입학정원 1200명이라는 루머를 확인해 주었다. 나아가 이를 법제화한 로스쿨법안에 따르면 총입학정원은 교육부장관이 법원행정처장, 법무부장관, 대한변호사협회장, 법학교수회장과 협의하여 정하도록 함으로써 기성 법조계의 영향력 하에 로스쿨 정원이 정해지게 되었다.

또한 로스쿨법안에 따르면 전임교수의 20% 이상은 반드시 5년 이상의 실무경력 변호사 중에서 확보하도록 하고 있다. 물론 로스쿨은 전문직업인을 양성하는 곳으로서 실무교육이 강조되어 마땅하지만 실무가교수 20%를 당장 인가신청요건으로 강제함으로써 현재 전국의 로스쿨 희망대학들은 교육 경험과 자질이 충분히 검증되지 않았지만 단지 경력법률가라는 이유로 이분들을 모셔오기에 혈안이 되어 있고 벌써 몇몇 대학에서는 내부적 분란도 생기고 있다. 장기적으로는 20% 요건이 타당할지 몰라도 충분한 변호사 풀(pool)이 형성되지 못한 시행 초기부터 이를 강제하는 것은 법조계의 이기적 직역확대를 의미할 뿐이다. 나아가 법안은 로스쿨 시행 후에도 대한변호사협회 산하에 법학전문대학원평가위원회를 두어 로스쿨에 대한 정기적인 평가를 행하게 하고 평가결과에 따라 정원감축 인가취소 등의 조치를 교육부에 건의할 수 있게 하였다. 이로써 법조계는 현재의 사법시험과 사법연수원 시스템 아래에서 가지는 법조인양성에 대한 통제권을 여전히 장악하게 되는 것이다.

결국 법안이 예정한 로스쿨 시스템은 현재의 법조양성체제의 은밀한 연장이라 할 수 있을 뿐 진정한 의미의 국민을 위한 사법개혁은 아닌 것이다. 현재 전국 법과대학 및 법학과에서 일년에 일만명 정도의 법학도가 배출되고 있다. 소문대로 총정원 1200명 수준에서 전국에 10개 정도의 로스쿨이 들어선다면 시민들은 오히려 지금보다 법으로부터 더 소외될 것이고 법조계의 특권은 지금보다 더욱 공고해지는 결과가 될 것이다. 기성 법조인들은 법률가 양성과 선발과정을 더이상 독점하려 하지 말고 이제 이를 시민의 품으로 되돌려야 한다. 로스쿨 도입을 전제로 한다면 그것은 설립에 있어 인가주의를 준칙주의로 바꾸어 시민들의 수요에 따라 법률가 공급이 정해지도록 하는 데서 출발할 것이다.
덧붙임

김도현 님은 동국대학교 법과대학 교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