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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윤한기의 인권이야기] 직장 건강검진으로 일터에서 배제되는 감염인들

지난해 국가인권위원회의 시민실천사업 'HIV/AIDS 인권지침서' 발간작업과 올해 단체협력사업 'HIV/AIDS 감염인 치료 접근권' 실태조사를 위해 '나누리+'는 감염인 간담회를 진행해 왔다. 간담회에서 감염인들이 토로하는 중요한 문제 가운데 하나가 직장 건강검진에서 원하지 않는 HIV 검진 때문에 피해를 당하는 일이다.

HIV 검진 때문에 부당해고를 당한 ㄱ씨의 사연을 보자. 지난해 봄 직장 건강검진에서 HIV 양성반응 판정을 받은 ㄱ씨는 감염사실을 안 직장 상사로부터 "일할 수 있겠느냐?"는 질문을 받았다. 아직 약을 복용하지 않아도 되는 건강한 상태였던 ㄱ씨는 이후 대기발령 상태가 됐다. 업무가 특수해서 바로 교체되기는 어려워 약 1개월 동안 인수인계를 하고 전혀 일해보지 않은 부서로 옮겨져 3개월을 근무했다. 이후 파견형식으로 원래 업무로 복귀했다가 출산휴가 갔던 동료가 돌아오자 다시 대기발령 상태가 됐다. ㄱ씨는 결국 회사의 권고와 상사의 그만두라는 최종통보까지 듣고 명예퇴직으로 내몰렸다. 당시 상담을 맡았던 필자는 엄연한 부당해고이니 노동부에 알리자고 ㄱ씨에게 적극 권유했다. 하지만 ㄱ씨는 자신의 감염사실을 또 드러내야 하는 부담 때문에 그냥 억울한 일을 감수하고야 말았다.

에이즈에 대해 한국사회가 가진 과도한 편견과 차별, 이에 따른 감염인들의 좌절은 필자를 답답하게 한다. HIV 감염인들은 HIV 양성이란 이유로 부당해고와 진료거부를 당해도 자신의 병명이 알려지는 게 두려워 법적인 구제나 이의제기 절차를 포기한다. 에이즈는 일상생활에서 전혀 전염이 안 된다는 사실도 제대로 모르는 직장 동료들에 의해 감염인은 '집단 따돌림' 당하고 스스로 직장을 그만두기도 한다.

본인이 원하지 않는 HIV검진은 사생활을 침해하는 중대한 인권침해인데도 직장 건강검진을 통해 관례처럼 이루어지고 있다. 게다가 검진결과는 본인 의사와 무관하게 공개되고 있다. 보통 직장 건강검진은 검진을 전문으로 하는 의료기관에 사업주가 의뢰하는데 검진항목이 많고 비용도 많이 드는 A급과 검진 항목이 적은 B급, C급 등으로 나뉜다. A급 검진 항목에는 문제의 HIV 검진이 들어 있고 노동조합에서도 A급 검진을 요구하는 경우가 많다. 문제는 검진의 결과가 사업주에게 일괄통보되는 바람에 HIV 양성반응이 부당한 해고로 이어진다는 점이다.

'후천성면역결핍증예방법' 제7조는 "감염자의 진단·검안 및 간호에 참여한 자"와 "감염자에 관한 기록을 유지·관리하는 자"에게 비밀유지 의무를 부여하고 위반하면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원하지 않는 HIV 검진에 따른 결과가 타인에게 함부로 통보된다. 에이즈 관련 법조항 가운데 꼭 필요한 것이 직장 건강검진에 HIV 검진을 무조건 포함시키는 것을 금지하는 조항이다. 어떤 검진보다도 HIV 검진은 당사자가 검진을 원해야 하며 검진을 받을 마음의 준비가 되었는지 상담도 충분히 이루어져야 한다. 양성으로 밝혀지면 심각한 사생활침해와 인권유린을 당할 수 있기에 결과가 본인에게만 통보되는 장치도 더욱 강화해야 한다.
덧붙임

윤한기 님은 에이즈인권모임 나누리+(www.aidsmove.org) 대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