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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윤한기의 인권이야기] "우리에게 약을 달라!"

"오늘날 아프리카에는 수백만 명의 여성들이 에이즈라는 또 다른 로벤섬(남아프리카 공화국 케이프타운에서 배로 30-40분 정도 걸리며 17∼20세기까지 백인들에게 저항하는 흑인들의 유배지로 병원과 군사기지, 최고의 보안시설을 갖춘 감옥)에서 홀로 희망을 잃고 투쟁하고 있다."

2004년 말 유엔 에이즈계획(UN AIDS)이 발표한 통계에 따르면, 현재 전세계에서 4000만 명이 HIV(에이즈를 일으키는 인간면역 결핍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있으며, 지금 당장 약을 먹어야 하는 에이즈 환자가 600만 명에 이른다. 하지만 그 가운데 10%만이 약을 먹고 나머지 90%는 비싼 약값 때문에 약을 먹지 못해 죽어나간다. 넬슨 만델라의 이 말은 버림받은 90% 가운데 상당수를 차지하고 있는 아프리카의 비참한 현실을 단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하지만 문제는 에이즈 치료제를 생산하는 다국적 제약자본들이 특허를 핑계로 약값을 비싸게 책정해 엄청난 폭리를 취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아프리카·아시아·남미 등 가난한 나라들은 의약품에 접근 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지난 9월 2일 문화방송(MBC) 시사교양 프로그램 <W>는 특허에 의한 살인을 당하고 있는 아프리카의 비참한 현실을 현지 취재를 통해 잘 보여주었다. 국민의 30% 이상이 HIV에 감염된 우간다에서는 세계보건기구(WHO)와 '세계에이즈구호기금'으로 세워진 HIV/AIDS 진료소에서 무상으로 약을 나눠주고 있다. 하지만 많은 환자들이 진료소에 갈 차비도 없고 걸어갈 기운도 없어 홀로 움막 같은 집에서 약은커녕 먹지도 못하고 온갖 피부병과 폐렴 등 '기회질환'(면역력 결핍에 따른 병)으로 오로지 죽을 날만 기다리고 있는 처참한 상황에 놓여 있다.

이런 아프리카를 돕겠다고 부시 행정부는 앞으로 5년 동안 150억 달러를 내놓겠다고 발표하면서도 생뚱맞은 단서를 달아 에이즈 환자와 활동가들로부터 거센 비난을 받았다. 낙태를 반대하는 단체, 순결을 강조하는 단체를 통해서만 지원하고 지원약품은 다국적 제약사의 '오리지널' 약만 허용한다는 것. 인도에서 생산되는 카피약으로 지원하면 지원액의 1/10만으로도 더 많은 환자들을 치료할 수 있는데 말이다. 카피약은 다국적 제약사의 치료제와 똑같은 성분으로 만들어져 우리 돈으로 1년에 70만원 정도밖에 들지 않는다. 단지 특허라는 로열티만 붙지 않았는데도 한 달에 100만원이 넘는 오리지널 약값보다 싼 것이다. 다국적 제약자본과 미국은 이런 카피 약을 다른 나라가 생산하지 못하도록 압력을 가해 생산을 중단시키고 있다. 이 때문에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정부가 국영제약사를 통해 에이즈 치료제를 생산하고 무상으로 공급하고 있는 브라질은 다국적 제약자본과 미국 등을 상대로 '특허파기'를 주장하며 세계무역기구(WTO) 무역관련지적재산권관련협정(TRIPs)의 예외조항인 '강제실시'를 강행하겠다고 으름장을 놓고 있는 상황이다.

에이즈 치료제 가운데 '네비라핀'(상표명 바이라문)은 간에 치명적인 독성을 유발해 최근 미국에서 이 약을 먹고 사망한 사례가 보고되었다. 이 때문에 미국과 유럽에서는 판매 금지된 이 약이 아프리카에는 계속 팔리고 있고 우간다의 HIV 진료소 의료진들은 금지약품이라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다. 한국에서도 12가지 정도의 오리지널 약만 보험등재가 되어 있어 약값을 정부가 지원하고 있으나, 세 가지를 한 번에 먹어야 하는 에이즈 치료용법의 특성과 부작용 등을 감안하면 안정성이 확보되지 않은 '네비라핀'까지 먹어야만 하는 상황이다. 필자 역시 지난해에는 오리지널 약을 수입해 먹었지만 1년에 840만원이나 되는 약값을 감당할 수 없어 지금은 부작용이 많은 다른 약과 문제의 네비라핀을 복용하고 있다.

많은 이들에게 에이즈는 죽음의 병으로 잘못 알려져 있지만 의학의 발달로 완치는 안되더라도 치료는 가능한 만성질병이 되었다. 우리 에이즈 환자들에게 필요한 것은 안정성이 확보된 약이다. 우리는 에이즈로 죽는 것이 아니라 특허로 죽어갈 뿐이다. "우리에게 약을 달라!"
덧붙임

윤한기 님은 에이즈인권모임 나누리+(www.aidsmove.org) 대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