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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무분별한 피의사실 공표는 인권침해

피의사실 공표와 인권침해 공청회 열려…책임주체 범위에는 이견

지난 1일 국가인권위에서는 '피의사실 공표와 인권침해' 공청회가 열렸다. 이날 공청회에서는 현재 관행적으로 이루어지는 피의사실 공표의 문제점과 개선방안이 논의됐다.

1일 열린 공청회

▲ 1일 열린 공청회



공청회는 박주선 전 국회의원과 김진흥 전 한샘식품 대표가 피의사실 공표에 의한 피해사례를 발표하는 것으로 시작했다. 박 전 의원은 1999년 옷로비사건, 2003년 나라종금사건, 2004년 현대비자금 사건과 관련하여 법정에서 무죄판결을 받았으나 그 이전에 이미 언론에 의해 피의사실이 보도됨으로써 실추된 명예는 회복되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김 전 대표는 1998년 포르말린 통조림 사건이 형사재판에서 무죄판결을 받았지만, 이미 이전의 언론공세로 인해 3년간의 재판기간 동안 피의자가 아닌 범죄자로 살아야 했다며 실질적인 피해보상과 명예회복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김씨는 당시의 사건 경과를 발표하는 도중 목이 메어 잠시 말을 잇지 못하기도 했다.

김기창 교수(고려대 법학)는 발제를 통해 "피의사실공표와 관련한 기존의 논의는 피의자 보호에 초점을 맞췄으나 재판의 공정성을 보장하기 위한 측면이 더 크다"고 지적하며 현재의 피의사실 보도는 수사기관의 일방적 주장이 마치 사실인 것처럼 보도가 되면서 이에 대해 이미 여론이 형성되어 사법부에 심리적 압박을 가해 공정한 재판을 어렵게 한다고 주장했다. 더불어 이러한 보도가 관행이 된 이유는 수사기관이 재판에 압박을 가하는 수단으로 이용될 수 있기 때문이며 언론사의 상업적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해서는 정보의 정확성보다 시의성이 더욱 중시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또한 "수사기관의 피의사실 공표가 (공공적 성격이 강한 사안 등에 대해) 예외적으로 허용된다 하더라도 그 발표의 내용은 누가 무슨 혐의로 언제 체포되어 어떤 죄목으로 기소되었다는 것에 그쳐야"하지 "그 이상의 정보와 판단을 재판 전에 공개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참가자들은 피의사실 공표금지가 언론의 보도관행으로부터 비롯되었다고 입을 모았다. 언론이 특종경쟁을 하게 되면서 피의자의 구속 전이나 기소 전 단계에서 검찰의 수사관계자 등으로부터 들은 사실을 주요 기사로 보도하지만 이후 재판 결과는 크게 취급하지 않는 관행이나 출입처제도 등이 문제점으로 지적되었고 과도한 추측기사의 문제점도 지적됐다.

하지만 공표금지 위반에 대한 책임주체의 범위가 어디까지 한정되어야 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다소 의견 차이를 보였다. 피의사실 공표죄의 적용 대상을 언론 등 비수사기관에까지 확대해야 한다는 발제자의 주장에 대해 표창원 경찰대 교수는 "피의사실을 알 수 있는 위치에 있는 수사기관 종사자 등에게 그 비밀을 준수하라는 의무를 부과하는 것이 타당하지 그로부터 전해들은 제3자의 언로의 자유를 속박하려는 태도는 반헌법적 태도"라 비판했다. 또한 <문화일보> 이현종 기자는 "앞으로 공판중심주의가 본격화되면 취재와 보도 역시 공판 및 판결중심으로 이루어지게 될 것"이고 "현재도 예전에 비해 신중한 보도를 하고 있는 추세"라고 전제한 뒤, "언론보도가 국민적 관심을 높이고 검찰수사에 힘을 실어준 측면을 부인할 수 없"으며 "언론의 추적보도로 추가적인 사실이 밝혀지거나 검찰수사의 단서를 제공한 측면도 많다"고 주장했다.

피의사실 공표금지의 시간적 한계를 어디까지 설정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에 대해서는 다소 이견이 있기도 했으나, 대체로 수사기관의 수사착수 시점부터 재판청구 전까지로 하되 공공적 성격이 강한 사안에 대해서는 진실성이 담보된다는 전제하에서 보도를 허용하는 등 구체적이고 세부적인 범위를 규정하여 조문화 작업을 할 필요가 있다는 것에 대해 공감했다.

한편 현직판사라고 자신을 소개한 한 방청객은 "기소권을 검찰이 독점하고 있는 현실에서는 공표금지위반 처벌대상이 기소권을 갖게 되는 상황이 되기 때문에 공표금지법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며 "현재 논의중인 형사소송법 개정에서 재정신청이 확대되면 공표금지위반에 대해 불기소되는 경우라도 재정신청을 통해 기소가 가능할 것"이라 지적하기도 했다.

이날 공청회는 피의사실 공표금지의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를 확인하고 이후 보다 구체적인 방안이 제시되어야 한다는 것을 확인하는 수준에서 마무리되었다. 또한 피의사실 보도에 있어 '공공적 성격'을 어떻게 규정해야 하는지는 앞으로의 과제로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