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운동사랑방 후원하기

인권하루소식

[김영원의 인권이야기] 인권영화제에서 마주친 어린이·청소년 인권

#1 진짜 '편협한 것'

"안녕하세요?" 평소에 알고 지내던 초등학교 선생님을 인권영화제를 상영하는 곳에서 만났다. "아이들이랑 같이 오셨나 봐요?" 그러자 선생님은 이내 얼굴이 굳어진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아이들에게 인권영화제를 알리는 홍보물을 나눠주려고 하자 교장이 "아이들에게 편협한 사고를 심어줄 수 있다"며 막고 나섰다는 것이다. 결국 어쩔 수 없이 선생님은 "교장 선생님께는 들키면 안 된다"고 신신당부를 하며 아이들에게 홍보물을 나눠줘야 했다.

아이들에게 인권을 이야기하는 것이 편협한 사고를 불어넣는 것이라는 교장의 생각 뒤에는 또 다른 진실이 숨어 있다. 바로 아이들이 권리를 아는 순간, 반인권적인 학교의 실상을 들켜 버릴까봐 그리고 아이들에게 복종을 강요하며 지켜온 자신들의 권위가 위협 당할까봐 두려운 것이다. 정작 편협하고 획일화된 사고를 주입하고 있는 것은 국가의 주도로 이루어지고 있는 공교육이며, 아이들의 교육은 뒷전인 채 학교라는 안전한 울타리 안에서 자신들의 권위만을 지키려고 몸부림치고 있는 학교당국임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2 잘 듣고 가서 뭐할까

인권영화제 부대행사로 열린 '청소년인권운동, 미래를 본다' 토론회는 과거 청소년 인권운동에 대한 평가와 함께 운동의 전망을 고민하는 자리였다. 고3이 되면 취업이나 입시에 시달리다 결국 지속적으로 운동이 고민되지 못하는 한해살이 운동, 징계의 위험에서 자신을 드러내지 못하고 온라인 속에 머무를 수밖에 없었던 운동 방식의 한계들이 하나, 둘 드러났다. 또한 청소년 대중은 온데간데없고 언론에서 주목하는 몇 명의 스타(?)를 중심으로 진행되거나 국회의원 등 또 다른 힘에 의존해 진행된 운동, 공부 외에 다른 활동을 한다는 것에 대한 주변 사람들의 따가운 시선과 핍박 등 반성과 어려움들이 모두 터져 나왔다.

그런데 뒤편에 양복을 입고 점잖게 앉아 토론회를 구경하는 사람들이 있었으니 서울시 교육청에서 나온 직원들이란다. "혹시 아이들 명단 적어서 교육청에 넘기는 건 아니죠?" 학교에서 인권문제가 터져 나오면 아이들의 인권을 '학교의 재량권'에 팔아먹고 자신들은 할 일을 다했다고 오리발을 내미는 교육 당국자들이었기에 시선이 곱지 않을 수밖에. 토론회가 끝나자 "잘 듣고 갑니다"라는 인사말을 남기고 그들은 유유히 사라졌다. 잘 듣고 가서 아이들의 이야기를 제대로 반영할지, 아니면 또 다른 감시와 통제를 구상할지는 두고 볼 일이다.


#3 아이들도 영화를 즐길 수 있도록

넉넉하지 못한 재정으로 무료 상영이란 원칙을 지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물론 그동안 물심양면으로 도와준 자원 활동가들과 어렵지만 자신의 주머니를 털어 10년을 지켜준 많은 후원자들이 있지만 더 많은 사회적 약자들을 고려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재정이다. 하지만 물질적인 것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다른 면에서 사회적 약자들을 배려해야 할 일들은 많다.

"아이들 건 없어요?" 인권영화제 기념 티셔츠를 판매하고 있는데, 어느 여성분이 묻는다. 질문을 받고나니 문득 이번 영화제가 어린이·청소년 인권을 주제로 내세우고 있지만 정작 어린이·청소년들이 영화를 즐길 수 있도록 세심하게 배려하지 못했다는 후회가 밀려왔다. 아이들의 인권이 주제인 영화를 상영하면서도 해설책자는 어른들 중심으로만 되어 있고, 인권영화제에 대한 정보도 아이들의 언어로 소개하지 못한 점 등 우리도 모르는 사이 아이들보다는 어른들을 우선시 하는 사고가 드러난 것 같아 한편으로는 부끄럽기도 했다.

끝으로 인권영화제에서 만난 어린이 청소년 인권이 어느 시기 특별한 행사에서만 주목받는 이벤트로 끝나지 않기를, 그리고 영화제에 온 많은 사람들이 관객으로만 남는 것이 아니라 어린이·청소년들이 권리행사의 당당한 주체로 설 수 있도록 지지하고 지원해 주는 버팀목이 되기를 부탁한다.
덧붙임

김영원 님은 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