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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광장으로 나온 청소년, 닫힌 입 열다!

입시기계, 통제대상으로 전락한 학생인권 현실 고발

“의사표현을 위해 이 자리에 왔어요. 무기를 들겠다는 것도 아닌데, 민주화 사회에서 추모제를 막는 건 말이 안돼요. 학생이라고 무시하는 건가요?”
“학생들의 자살이 개인적인 자살인가요? 이 사회가 불러낸 이 상황을 어떻게 헤쳐나가야 합니까?”
“내신등급제만의 문제가 아니라 대학서열화의 입시제도 자체가 문제입니다.”

지난 7일 광화문 교보문고 앞에서 열린 ‘입시경쟁교육에 희생된 학생들을 위한 촛불 추모제’에서는 가혹한 입시경쟁과 ‘지도’라는 이름의 학생통제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쏟아져 나왔다. ‘21세기청소년공동체 희망’(아래 희망)의 주최로 열린 이 날 추모제에는 500여명의 학생들이 모여 인권을 빼앗긴 채 공부하는 기계로 내몰린 학생들의 처지를 고발했다.

추모제가 시작되기 전, 교보문고 앞에는 학생뿐만이 아니라 서울시교육청 관계자와 생활지도 담당교사 100여명, 그리고 수십 명의 취재진이 몰려들어 장사진을 이뤘다. 특히 현장 곳곳에는 상의에 초록색 스티커를 붙인 교육청 관계자와 교사들이 추모제 현장 주위를 에워싸고 ‘학생 현장지도’에 나섰다. 추모제에 참여하기 위해 모여든 학생들이 위축되는 것은 당연한 일.

ㅎ여고 학생부장 ㅁ교사는 교사들이 추모제 현장을 둘러싸고 있는 것이 학생들에게 위협감을 주지 않겠는가, 학생의 표현의 자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에 “학생들의 안전을 위한 배려 차원에서 이 자리에 나온 것”이라며 말을 돌렸다. 하지만 근무하는 학교의 학생을 만나게 되면 어떻게 하겠느냐는 질문에는 “귀가조치 시키겠다”고 말해 사실상 학생들의 추모제 참여를 막기 위해 이 자리에 나온 것임을 고백했다.

‘현장지도’와 가열된 취재열기에 부담을 느낀 일부 학생들은 홍보물과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고 추모제에 참여하기도 했다. 학생들이 자신의 얼굴을 당당히 드러내고 말할 수 없는 현실은 학생 인권의 현주소를 보여준다. 하지만 위압적인 분위기가 학생들의 진지한 목소리를 막지는 못했다. ㅅ여고 1학년 김모 씨는 “이제 입학한 지 3개월이 지났는데 벌써 검정고시를 보는 게 낫겠다며 자퇴한 친구가 생겼다. 지난 중간고사 기간 1주일 동안, 4일 밤을 새고 나머지 3일은 3시간씩 잤다”며 가혹한 입시 중압감을 생생하게 전했다. 현장에 나온 고1학생 학부모 김준희 씨도 “아이가 아파서 하루 결석했는데 친구들이 프린트물을 보여주지 않는다. 시험에 2개를 틀렸다고 아이가 11시까지 집에 못 들어오더라. 이런 현실 아래 어떻게 원만하게 친구를 사귈 수 있겠는가. 교육정책을 믿었는데 배신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자유발언 시간에 자신을 ‘삭막하고 팍팍한 교실에서 공부하는 수험생’이라고 소개한 고3학생은 “지난 3개월 동안 꿈이 아니라 죽음을 선택한 친구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답답하고 미안할 따름이지만, 우리가 여기에 모인 것은 이런 현실을 대물림하지 않기 위해서입니다”라며 입시전쟁에 짓눌린 현실을 학생들이 나서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다른 학생은 “우리는 학교에서 행사 참여를 막고 징계의 위협이 있는 어려운 상황에서도 이 자리에 나왔습니다. 왜 우리는 강제로 머리를 깎이고 억압적인 학교생활을 해야 합니까. 학생회칙은 도대체 누가 정하고 있습니까. 학생이 중심이 되는 학교문화를 만들어야 합니다”라고 주장해 학내에서 학생인권을 실현하는 일 또한 시급한 과제임을 강조했다.

다행히 이날 추모제는 교육청 관계자나 교사들과의 큰 마찰 없이 마무리됐다. 이날 터져나온 목소리들은 학생들이 입시경쟁과 통제에 억눌려 있으면서도 현실을 바꾸고자 하는 열의로 꽉차있음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행사를 주최한 희망은 자유발언대와 쪽지를 통해 표현된 현 교육정책에 대한 학생들의 의견을 모아 교육부에 전달하겠다고 약속했다.

한편 지난 7일 추모제와 관련하여 아직까지 우려했던 학생징계 사례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 9일 희망은 교육당국과 학교측이 학생들의 추모제 참석을 가로막은 데 대해 유감을 표하고, 오는 14일 열릴 예정인 두발규제 반대 촛불문화제에서는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협조할 것을 촉구했다.

이에 앞서 지난 7일 다산인권센터, 인권운동사랑방 등 12개 인권단체들도 긴급성명을 발표, 교육부와 서울시교육청의 ‘학생 집단행동 예방대책’은 학생들의 정당한 집회․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라며 행사 참여 원천봉쇄 시도의 중단과 반인권적 교칙의 즉각적인 개정을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