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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논평] 샴페인 아래 불타버린 절규

또다시 화마가 5명의 성매매 피해 여성들을 삼켰다. 이번 사건은 성매매 방지법 시행 1주년을 맞이해 관련 기관들이 자축의 분위기에 들떠 있을 때 발생한 어처구니없는 참사였다. 더욱이 신임 경찰 총장이 "인권은 반드시 지켜야 할 절대적인 가치"라며 '인권명함'을 내밀고 '인권보호센터'와 '인권보호단'을 만들겠다고 분주히 홍보하던 와중에 생긴 일이라 더욱더 기가 막힌다.

이번 참극은 성매매 방지법 시행이 얼마나 형편없이 이루어지고 있는지 한 편의 상황극처럼 보여주었다. 미아리에서는 수백 개의 업소가 조용히 성업 중이었다. 화재가 난 업소는 군산 대명동처럼 감금 시설이었다. 밖에서는 창문처럼 보이지만 안에 들어서면 쇠창살과 합판으로 창문은 모두 폐쇄되어 있었다. 성매매를 강요당하던 피해 여성들은 이미 여러 차례 경찰에 문자 메시지를 보내는 등 구조를 요청했지만 경찰은 조사하는 시늉만 하고 말았다. 화재가 나던 날도 조사를 받고 돌아온 여성들은 다시 '영업'을 해야 했다.

우리는 경찰에 대해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누를 수가 없다. 집결지를 탈출한 여성들은 경찰의 단속이 눈 가리고 아웅하는 식이라고 증언해왔다. 단속이 실시되면 가장 먼저 업주들에게 정보가 알려지고 피해 여성들은 이미 짜여진 시나리오에 따라 업소를 빠져나가곤 했다고 한다. 경찰은 이제까지 단속해야 할 업주는 '보호'했으며 보호해야 할 피해 여성들은 업주들의 먹이감으로 던져놓았던 것이다. 그 결과가 바로 성매매 방지법 시행 1주년을 비웃기라도 하듯 벌어진 이번 화재 참극이다. 미아리 업소들은 희생자들을 애도하기 위해 3일간 영업하지 않는다고 안내문을 붙이기도 했다. 끔찍한 일이다. 희생자들이 불쌍하지만 '그까짓 단속'은 얼마간 언론에서 떠들고 나면 잠잠해 질 것이라는 업주들의 의지를 고스란히 읽을 수 있다. 이들의 오만함은 바로 부패하고 무능한 검·경에게 있음을 분명히 확인한다.

경찰이 이번 사건에서 보여준 행태는 '인권 경찰'이 되겠다는 다짐에 침을 뱉은 꼴이다. 정신지체장애 여성의 애타는 구조의 목소리를 외면하고 "머리가 좀 나쁜 여자인 줄 알았다"고 변명하는 경찰에게 인권의식은커녕 최소한의 치안이라도 맡길 수 있을까? 피해 여성이 신고한 업주는 무려 성매매 전과 19범이었다. 경찰이 불구속이라는 미온적 대처를 하지 않았더라면 이번 참극은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프랑스에서 한참 인권선언의 봇물이 터지던 19세기 말 여성운동가 올랭프 드 구즈는 '여성과 여성시민들의 권리 선언'을 내놓았다. 당시 인권선언이 부르주아 남성들의 권리만을 옹호하는 명백한 한계에 맞서 그녀는 '세상의 절반'의 권리를 부르짖었다. 그녀의 권리선언의 한 구절은 이렇게 말한다. "여성이 교수대에 오를 권리가 있듯이 연단에 오를 권리가 있다." 2백년 전 문서의 고색창연한 구절이 아니다. 강요된 '죽음의 권리'를 넘어 떳떳한 시민으로 '광장에 나설 권리'가 성매매 피해여성들에게도 있다. 경찰은 고인들의 죽음을 욕되게 하지 말고 진정한 '인권경찰'로 거듭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