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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배경내의 인권이야기] 물의 사유화에 맞선 가난한 이들의 싸움

"시장이 물 팔 때 농민은 피 마른다!"

최근 경남 밀양에서는 생수공장 건립 철회를 요구하는 농민들의 저항이 몇 달째 계속되고 있다고 한다. 자연의 선물인 지하수를 이용해 농사를 짓고 목을 축여온 농민들이 생수공장이 건립될 경우 지하수가 고갈될까 우려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게다가 생수공장 임원진에 시장의 가족까지 포함된 사실이 알려지면서 시장이 공유자원인 물을 내다팔아 자기 배를 불린다는 비판까지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물을 상품으로 내다팔아 이윤을 챙기려는 생수기업과 공유자원인 물을 지키고자 하는 주민들 사이의 싸움은 밀양에만 있지 않다. 지난해 경남 산청에서도 생수공장 확장 공사에 반대하는 농민들의 시위가 일어난 적 있다. 생수공장이 들어선 이래 인근마을에서는 질퍽했던 논이 물기 하나 없는 마른 밭으로 변할 정도로 물이 말라가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도 물을 더 퍼 올리겠다고 하니 농민들은 마른하늘에 날벼락을 두 번씩이나 맞는 셈이 됐다. 흐르는 물을 퍼 올려 병에 옮겨 담는 수고만으로 기업들이 배를 불리고 있는 사이, 가난한 농민들은 식수를 얻기 위해 계곡까지 물을 뜨러 다니고, 논에 물을 대기 위해 지하 몇 백 미터까지 땅을 파내려가야 하는 신세가 된 것이다.

지난해 11월에는 한진그룹 계열사인 한국항공(주)이 제주도에서 뽑아 올린 생수의 시장판매를 허가해줄 것을 제주지사에 요청했다가 도민들의 반발에 부딪혀 무산된 사례도 있었다. 이미 제주에는 제주지방개발공사가 퍼 올리는 '삼다수'가 있고, 한국공항(주)도 매월 3천톤의 지하수를 퍼 올려 대한항공 기내용과 현지 공장의 생활용수로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 이런 상황에서 한진그룹이 국내외 시판까지 나설 경우 취수량 확대를 요구할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고, 종국에는 제주의 생명줄인 지하수가 고갈될 것이다. 다행히 제주지사가 시판 불허 결정을 내려 논란은 일단락됐다. 하지만, 안심하기에는 이르다. 공공의 자원인 물을 상품화하여 사욕을 채우려는 생수기업들의 시도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은 가게 진열대를 가득 채운 생수병들이 일상의 한 자락을 차지하고 있지만, 국내에 생수 시판 계획이 처음 발표된 90년대 초반만 하더라도 공유자원인 물을 기업의 사유물로 전락시킨다는 국민적 저항이 만만치 않았다. 그러다 수돗물에 대한 시민들의 불신이 높아지고, 정부가 생수(먹는샘물)의 국내 시판을 허용하지 않는 것은 직업선택의 자유를 침해한 것이라는 대법원 판결이 나오면서 94년 처음으로 생수 시판이 허용되기에 이르렀다. 이후 생수시장은 급팽창했고, 그럴수록 점점 더 지하수는 고갈되고 가난한 사람들은 물을 얻기 위해 더 많은 수고와 비용을 지불해야 하는 처지가 됐다.

이런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 위해서는 물의 상품화, 사유화 흐름을 저지하고 물을 공공의 자원으로 되돌려놓아야 한다. 지난 2003년 유엔사회권위원회도 일반논평을 통해 "물에 대한 권리는 인간적인 삶을 이끄는 데 필수적인 요소일 뿐 아니라 다른 인권들을 구체화하는 데 반드시 필요한 선결요건"이라고 밝힌 바 있다. 식량을 생산하고 밥을 짓고 가축을 돌보고 위생을 유지하는 그 모든 일에 물은 없어서는 안될 필수품이기 때문이다. 그러하기에 자연은 물을 누군가의 소유물이 아닌, 모두가 이용가능한 자원으로 선물했다. 이런 물을 사적인 이익을 위하여 파는 행위는 그 자체로 공유자원에 대한 인간의 권리를 침해하는 것이며, 특히 가난한 사람들에게서 생존권과 건강권을 빼앗는 일이 된다. 직업선택의 자유나 소유권이라는 개념으로 물을 평등하게 이용할 수 있는 기본권을 빼앗아서는 결코 안된다.

'물은 상품이 아니다'는 명제는 당연한 듯 들린다. 그러나 물을 사먹는 일이 일반화되고 기업들의 탐욕이 물 시장의 팽창을 낳고 있는 상황에서 이 명제를 현실로 만드는 일은 쉽지 않다. 물의 상품화, 사유화를 허용하는 전제 위에서 지하수의 개발과 이용을 일정하게 제한하기만 하는 현행 법률체계로는 결코 물의 고갈 위험이나 불평등한 사용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전국의 가정에 믿고 마실 수 있는 수돗물을 공급하고 물이 부족한 곳에 적절한 물을 공급하는 그 모든 행위는 정부의 몫이어야 하고 공공의 감시 아래 놓여야 한다. 시민들도 사기업이 파는 생수에 점점 더 의존하게 되는 생활양식을 바꾸는 고단한 실천에 나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