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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밀실타협안, 과거청산 대의 훼손할 것"

각계 714명, 올바른 과거청산법 2월 제정 촉구

2월 임시국회에서 과거청산 관련법이 처리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교수, 작가, 변호사 등 714명이 '올바른 과거청산법 2월 제정을 촉구하는 지식인 선언'을 공동 발표했다. 여기에는 김세균 교수, 장완익 변호사, 소설가 이인휘, 역사학자 이이화 등이 참여했다.



15일 참여연대 강당에서 기자회견을 연 이들은 "그동안 정치권은 과거청산을 단지 한 정권의 정치적 술수로 치부하면서 정쟁과 이념논쟁의 소재로 삼아온 감이 있다"며 "지난해 말 여야의 합의로 통과시키기로 약속했던 과거청산법을 이번 2월 국회에서 반드시 처리할 것"을 촉구했다.

동시에 이들은 "비록 입법이 늦어지기는 했지만 우리는 이 법안이 정치권의 밀실 타협에 의해 생색내기로 통과되어서는 안 된다는 점을 분명히 한다"며 지난해 말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이 합의한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기본법안'에 대한 반대입장을 분명히 했다. 즉 법안 명칭에서 드러나는 것처럼 몇몇 학자를 중심으로 과거의 역사를 정리하는 소극적인 방향으로 흐를 위험성을 지적하는 것. 이들은 "과거 공권력이 국민에게 저지른 잘못에 대한 구체적인 진상규명을 바라는 것이며, 이를 통해 이러한 비극이 재발하지 않을 수 있는 안전장치를 마련하자는 데 이 법의 취지가 있다"고 밝혔다.


밀실에서 만든 누더기 법안

양당의 안에 대해 '올바른 과거청산을 위한 범국민위원회'(아래 과거청산국민위)는 특히 법안의 제2조(진실규명의 범위) 중 과거사 정리와 관련된 사항은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고 못박았다. 조사 범위에 '민간인 집단 희생 사건'을 명시한 것은 적극 찬성하나 '집단' 규정은 조사범위를 제한할 가능성이 있으므로 '집단성' 여부를 떠나 모두 조사대상에 포함시켜야 한다는 것. 또 '정통성 부정 세력에 의한 테러 등'에 대해 "이미 기존에 충분히 진상이 파악된 것이고, 오히려 수사 과정에서 억울하게 인권 침해를 받은 경우가 많으므로 따로 이에 대한 추가적인 진상규명을 할 필요는 없다"고 지적했다. 국가 공권력에 의한 인권침해 조사라는 기본 목적과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

한편 양당의 안 제2조 제2항이 확정판결을 받은 사건을 조사대상에서 제외하고, 예외적으로 재심 사유에 해당할 경우에만 조사를 할 수 있도록 규정한 것에 대해 과거청산국민위는 "민사소송법이나 형사소송법의 재심사유가 워낙 제한적이라서 이 규정에 의하면 제대로 진상 조사를 할 수 있는 사건이 아예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위원회의 결정에 따라 모든 인권 침해 사건을 새로 조사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

또 과거청산국민위는 양당의 안이 제4조(위원회의 구성)에서 위원의 자격을 △역사고증 등 연구자 △전임교수 △법조인 △공무원 등에 한정해 "우리 사회 대부분의 건강한 상식을 갖춘 사람들은 이러한 자격조차 없게 된다"며 진정한 화해를 목적으로 한다면 이에 걸맞게 위원의 자격도 폭넓게 인정할 것을 주장했다.


조사권은 축소하고 조사대상자는 보호하고

한편 과거청산범국민위는 양당의 안이 위원회 조사 권한을 과도하게 축소시킨 반면 조사대상자를 과도하게 보호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양당 밀실야합 과정에서 삭제된 조사 권한 즉 △영장청구의뢰권 △예금조회권 △통신사실조회권 △실지조사에서의 신문 등의 권한을 위원회에 부여해야 하며 청문회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는 것. 이어 과거청산국민위는 "의문사진상규명위가 이미 보유했던 통신사실조회권이나 고발 및 수사의뢰권 마저 삭제한 것은 위원회의 업무가 무엇인지에 대한 기본적인 전제 자체가 잘못된 것"이라고 꼬집었다. 또 조사대상자를 과도하게 보호하는 내용, 즉 위원회가 조사 결과를 보고하기 전까지는 조사 내용을 공개할 수 없도록 한 조항과 이를 위반할 경우 중한 형벌로 처벌하는 법안 제31조는 "기존 형법 체계에 비해 너무 과도한 것이므로 삭제되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마지막으로 "다른 법률에 의하여 진실규명, 피해보상, 손해배상 또는 명예회복 청구를 하였거나 할 수 있는 경우 이 법에 의한 진실규명 신청을 할 수 없다"는 제44조에 대해 "해석하기 애매한 규정"이라며 "다른 법률에서 보상이나 배상을 한다 하더라도 진상규명이 소흘하거나 아예 진상규명이 생략된 상태라면 진상규명신청을 할 수 있어야 한다"고 밝혔다.

한편 최근 국가정보원 등 정부기관이 자체 진실규명위원회를 설치하거나 할 예정인 것에 대해 기자회견에 참석한 장완익 변호사는 "국정원이나 국방부가 자체적으로 과거사를 조사한다는 것은 어떤 법적기준도 없고 책임 소재도 불분명한 행위로써 진상조사라고 할 수도 없다"며 "진실규명위원회가 만들어져서 정부기관과 협조함으로써만 올바른 과거사 정리가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