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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저기요, 저 아세요? "

▷ 즐거운 물구나무 ◀

#1. "학생, 내 얘기 좀 들어봐"

'어디까지 가십니까'로 시작된 택시기사의 말은 '학생'이라는 호칭과 함께 어느새 '반말'로 바뀌어 있다. 가끔씩은 "왜 말을 놓고 그러십니까"라고 항의를 하기도 하지만, 대부분 '어, 나 학생 아닌데'라는 생각이 들 때쯤이면 택시기사의 말은 이미 저만큼 달려가고 있다. 대개 그때부터는 '훈계'에 들어간다. 이때 반론이라도 펼칠라치면 그건 이미 '반론'이 아니라 '말대꾸'가 되고 택시기사는 '버르장머리'라는 단어를 떠올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 다음부턴 '안봐도 비디오'다. 조회시간 교장선생님 훈시같은 지루한 일장 연설이 이어진다.


#2. "어머니, 아니…손님"

상점 점원의 '어머니'라는 호칭에 잔뜩 눈살을 찌푸리자 그 점원은 금새 당황하며 '손님'이라는 호칭으로 '잘못'을 만회하고자 한다. 하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 선배는 자기는 결혼도 안 했고 아이도 없는데 사람들이 자꾸만 '어머니'라고 부른다며 '고통을 호소'했다. 당황하며 "저 애기엄마 아니예요"라고 말하기라도 하면 그 때부터 그녀는 수많은 질문공세를 받게될지도 모른다. 그럴 때면 왜 애기엄마가 아니라고 '커밍아웃'을 했는지 차라리 후회가 될 지경이다.


#3. "할아버지, 여기 앉으세요"

아버지는 당신에게 하는 말인줄 알면서도 굳이 못들은 척 하신다. 당신이 '할아버지'라고 불리는 것에 대한 완강한 저항의 표현이다. 그래서 아버지는 지하철 타는 걸 싫어하신다. '젊은이'들이 자리를 양보하는 게 영 마뜩지 않은 모양이다. 가끔은 "내가 왜 할아버지냐"며 직접적으로 섭섭함을 드러내기도 하신다.


호칭은 관계를 드러낼 뿐만 아니라 관계 맺는 방식을 결정하고 한 사람을 일방적으로 규정하기도 한다. '학생'이라는 호칭은 '어른과 학생'이라는 수직적인 관계를 만들어내고, '어머니'는 결혼과 출산을 암묵적으로 강요한다. '할아버지'는 '당신은 늙었습니다'는 의미를 듣는 이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전달한다. 과연 우리 모두가 평등한 관계를 맺을 수 있고, 누군가를 일방적으로 규정하지 않는 호칭을 가질 수는 없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