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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 즐거운 물구나무 ◀ 커피자판기 '미스 리'를 고발한다

웬만한 대중음식점이면 무료 자동 커피자판기를 비치해 놓은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식사를 하고 나서 즐겁게 담소를 나눌 때 혹은 식사 후엔 언제나 가벼운 후식거리를 원하는 나 같은 사람에게 이 커피자판기는 너무나 반가운 존재다. 그런데 얼마 전, 서울시내 한 음식점에서 너무나 당혹스런 장면을 목격하게 됐다. 동료들과 함께 늦은 저녁식사와 술자리를 파하고 나오며 여느 때와 다름없이 공짜커피를 뽑아 마시려고 손을 내밀려던 차였다. 자판기의 생김새나 모양, 커피의 종류 등 모든 것이 여느 것과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나를 당황하게 만든 것은 다름 아닌 그 자판기에 보일 듯 말 듯 작은 글씨로 새겨 넣어진 상표명 'Miss Lee(미스 리)'라는 문구였다.

'미스 리'. 자판기 이름으로 친근한 명칭을 사용하면 좋지 뭐 어떠냐고 반문하는 이가 있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뭐 그리 호들갑을 떠냐고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일은 단순히 음식점 커피자판기 이름과 관련해 벌어진 헤프닝으로 끝날 일이 아니다. 이 사건은 "여자는..., 남자는...."으로 시작되는 성 역할에 대한 고정관념이 우리 사회 곳곳에 내재되어 있음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한 집단을 일방적으로 규정해버리고 대상화하는 폭력은 우리 일상에 숨어 꿈틀거리고 있다. "여자는 사무실의 꽃이야", "여자는 남자보다 일을 못해", "여자가 결혼했는데 무슨 일?" 등 여성을 가두는 무수한 말들은 너무나 자연스럽게 사용되고 있다.

더욱이 나를 안타깝게 하는 것은 성역할 고정관념이 무의식중에 작동하여 많은 경우 '사적'이고 문제 삼을 필요가 없는 것 혹은 아예 문제로 인식조차 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오히려 문제를 제기하는 여성을 '쌈닭' 취급하고 '예민하다'는 평을 하는 현실에서 여성들은 얘기조차 할 수 없는 분위기에 놓이게 된다.

이제 우리 안에 무의식처럼 존재하고 있는 성 차별적 인식과 일상의 폭력을 제대로 인식하고 폭넓게 소통하는 장을 마련해나가야 한다. 또한 여성에게 성차별적 기제가 더욱 무거운 침묵 속에서 작동하고 있다는 사실도 명심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