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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 유해정의 인권이야기 ◑ "우리 자식도 배우게 해주세요"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내 어머니의 소원은 한결같다. 때론 각박한 세상살이에 그 소원의 내용이 다양해지고 때때로 무게중심이 달라졌는지는 알 수 없지만, 내가 기억하는 한 내 어머니의 이뤄지지 못한 소원은 평생을 짓누르는 한이, 우리 가족의 아물지 않는 상처가 되었다.

둘째 언니를 낳고 1년이 지나서야 어머니는 언니가 뇌성소아마비로 평생을 살아야 한다는 사실을 알았다고 했다. 혼자서는 제대로 걸을 수 없고, 항상 누군가의 손길이 필요하다는 사실에 어머니는 그것이 마치 자신의 잘못인 양 언니에게 죄스러워했다. 그러나 어머니를 더욱 힘겹게 했던 것은 제대로 가르칠 수 없는 '현실'이었다. 언니는 남들과 다르다는 이유로 일반학교 입학을 거부당했고, 2년간의 특수학교 생활을 강요당해야했다. 언니를 일반학교에 진학시키기 위해 어머니는 '수치스러운' '애원'을 마다하지 않으셨고, 생활의 여유는 모두 포기하셔야했다. 어머니의 억척으로 언니는 초등학교를 졸업할 수 있었고 중학교에 진학할 수 있었지만, 고등학교의 문턱은 결국 넘지 못했다. 만만치 않은 세상 속에서 언젠가 혼자 서야할 언니를 위해 더욱 더 많이 주고 싶었던 어머니의 소원은, 마음으로나마 자유롭게 걷고 싶었던 언니의 꿈은 '교육현장'에서 무참히 짓밟혔다.

그로부터 20여 년이 지났지만 현실은 별로 달라지지 않았다. 한 조사결과에 따르면 우리나라 성인 장애인의 52.3%가 초등학교 졸업이하의 교육밖에 받지 못했으며, 학령기(3~17세)의 장애인 24만 명 중 75%가 본인의지와는 무관하게 교육현장에서 소외되고 배제돼있다. 학교에 진학하기 위해선 부모가 '보조교사'가 되어야하고, 소풍을 수련회를 가는 일은 '다쳐도 학교에 책임을 묻지 않겠다'는 '각서'가 필요한 일이 되어버렸다. 상급학교로 갈수록 적은 특수학급의 수는 상급학교 진학을 위해 '이사냐' '학업포기냐'에 대한 선택을 강요하고, 장애교육에 대한 빈약한 투자는 더욱 빈곤한 부모들의 주머니를 강탈한다.

장애를 가진 아이들과 그렇지 않은 아이들이 한 교실에서 서로를 이해하는 과정을 배우며, 함께 교육받고 성장하는 통합교육은 너무 요원한 꿈일 뿐이다. 이런 참담한 현실은 장애를 가진 한 인간을 '인격체'가 아닌 동정과 시혜의 대상으로, 때론 사회의 치부나 부담스러운 존재로 전락시킨다. 또한 '역경을 딛고선' '인간승리'라는 수식어를 통해 장애를 가진 이들의 성공의 당락은 마치 가족과 장애를 가진 이들이 쥐고 있는 양 떠들어댄다.

내 어머니의 이뤄지지 못한 소원, 사람답게 살고 싶다는, 배우고 싶다는 처절한 절규는 단식농성이라는 외침으로 오늘로 22일째 국가인권위원회의 복도 한켠에서 울려 퍼지고 있다. 태어나면서부터 '비정상'이라는 인식 앞에, '효율'과 '경제'라는 미명 앞에 철저히 짓밟혀 온 장애인들의 몸부림치는 절규가 어디 22일이랴!

이번만큼은 승리하기를, 꼭 승리하기를 간절히 염원한다.

◎유해정 님은 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