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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장준하 죽음의 진실' 막는 암초

추가 사실 밝혀낸 의문사위, "국정원 문서고 열라"

유신독재에 항거하다 의문사한 장준하 씨 사건을 추적하고 있는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가 조금씩 진실에 다가서고 있으나, 국가정보원 등 관계기관의 비협조로 커다란 암초에 부딪혀 있다. 14일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아래 의문사위)는 장준하 씨 의문사와 관련한 중간조사 결과를 발표하고, 진상규명의 열쇠를 제공할 국가정보원(아래 국정원)과 기무사의 문서고를 열어줄 것을 요구했다.

일제시대 광복군 활동에 이어 해방 후 『사상계』를 통해 언론민주화 운동과 유신독재 반대운동을 활발히 전개하던 장준하 씨는 1975년 8월 17일 등산 도중 변사체로 발견되었으나, 사건 발생 하루만에 실족사로 처리됐다. 그 동안 장 씨의 죽음과 관련해서는 숱한 의혹이 제기돼 왔다. 특히 △후두부 부위에 함몰골절상, 오른쪽 팔과 둔부 부위에 주사 자국이 발견된 점 △절벽에서 추락했다는 사체의 의복에 미끄러지거나 긁힌 흔적이 전혀 없는 점 △사체 주변에 있던 안경이나 보온병에 긁힌 흔적조차 없는 점 △당시 장 씨와 동행했던 유일한 목격자인 김용환 씨의 진술이 사실과 부합하지 않는 점 등은 여전히 해명되지 않고 있다.

유일한 목격자인 김용환 씨가 "중앙정보부(아래 중정)의 유급 정보원 (P/A)"이라는 진술을 확보해 온 의문사위는 "사고 발생 당시 장 씨의 자택에 전화를 걸어 사고 사실을 전한 의문의 주인공이 바로 김용환 씨"라는 사실을 추가로 밝혀냈다. 하지만 당시 사고현장 주위에는 사용할 수 있는 전화가 없었고, 사고 발생 직후 사라졌던 김 씨가 무엇을 했는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문으로 남아있다. 또 사고 당일 작성된 중정 문서에는 전화를 건 주인공이 "김용환(동대문구 이문동 거주)"이라고 기재되어 있는데, 중정이 어떻게 김 씨가 전화한 사실을 알았으며 거주지까지 파악하고 있었는가 하는 점도 중정의 사고 개입 의혹을 키우고 있다.

이에 따라 의문사위는 김 씨와 중정과의 관계를 명확히 밝혀내기 위해서는 국정원이 관련 문서를 공개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국정원은 당시 작성된 한 장(!)의 '중요 상황보고서' 이외에는 다른 문서가 없다며 지금껏 자료제출 요구에 응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75년 3월 31일부터 하루에도 몇 차례씩 장 씨에 대한 사찰보고서를 작성해 왔던 중정이 유독 사건 당일에만 한 장의 보고서를 작성했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게다가 의문사위는 "당시 중정의 추가 보고가 있었다는 증거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의문사위는 장 씨 사망 발생 이튿날 당시 진종채 보안사령관이 박정희 대통령을 방문해 이례적으로 독대 면담했다는 사실도 추가로 밝혀냈다. 의문사위는 또 △당시 두 명의 군인과 장 씨가 만나고 있는 것을 목격했다는 진술이 지속적으로 나왔고 △사고 인근지역에 보안부대가 존재했으며 △사고 후 신고를 받고 인근 부대가 출동해 사건을 기록했다는 사실을 파악하여 기무사령부에 관련문서 제출을 요청하였으나, 기무사로부터 문서가 남아있지 않다는 회신만 받았을 뿐이다.

이제 죽음의 진실이 세상 밖으로 나올 수 있는 공은 국정원을 비롯한 국가기관으로 넘어갔다. 지난해 노무현 대통령은 "권력기관이 자료를 내놓지 않으면 청와대로 직접 가져 오라 해서 내가 직접 전해주겠다"고까지 말하며 의문사위의 활동에 대한 전폭적인 지원을 약속한 바 있다. 하지만, 억울한 죽음의 진실을 밝히려는 의문사위 앞에 놓인 장벽은 여전히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