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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고근예의 인권이야기

지하철 단상

지하철에서 장애인·노약자 자리를 비워두는 젊은이들을 주인공으로 한 모 광고가 텔레비전에 나온 이후 확실히 장애인·노약자 자리는 그 정해진 주인에게 돌아가고 있다.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로 인해 노약자 자리에 앉아 눈을 말똥말똥 뜨고 나이든 어른을 쳐다보는 뻔뻔하고 민망한 젊은이(?)들이 줄어든 것도 확인할 수 있다. 이보다 더 국민적 실천을 불러온 광고가 있을까 싶을 정도다.

그런데 지하철에서 흔하게 목격되는 장면 중 하나는 장애인·노약자 자리를 찾아서 흔들리는 지하철에서 발걸음을 떼는 나이든 어른들과 나머지 긴 의자에는 젊은 사람들만 모여 앉아 있는 광경이다. 서 있는 노인이 긴 의자에 앉은 사람들에게 시선이라도 보내면 '노약자 자리로 가지 왜?' 하는 듯이 노인을 외면하는 모습. 더욱이 노약자 자리에서 노인이 호통이라도 치는 일이 벌어지면, 사람들의 표정은 그야말로 다양하게 변한다. 이런 표정 속에서 여러 가지 복잡한 생각이 밀려든다. 눈에 보이는 '공경'과 보이지 않는 이 '거리감' 사이에서 느끼는 씁쓸함.

노약자 지정석을 마련하는 배려는 할 수 있지만, '어느 곳에나 앉을 수 있다'는 노인에 대한 이해는 점점 멀어지는 듯하다. 문득 그 텔레비전 광고는 목적한 공익성과 상반되게 부정적인 효과, 바로 '노인과의 분리'를 조장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은 생각마저 든다. 의도하지 않았겠지만 장애인·노약자 석에 나이든 어른만 모여 앉아 있고, 나머지 자리에는 그보다 젊은 사람들과 아이들이 모여 앉아 있는 모습은 분명 자연스럽게 보이지 않는다. 노인과 그 외 사람들의 단절된 일상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는 생각에 마음을 불편하게 한다.

전체 인구 중 65세 노인 인구가 7%를 넘어선 우리나라는 본격적인 노령화 사회에 접어들었고 노령 인구는 증가 추세이지만, 노인을 바라보는 그보다 나이 적은 사람들의 이해는 충분하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노인의 노동이나 노인의 여가, 건강, 교육 등에 대한 관심은 아직 노인이 아닌 이들의 관심 대상이 아니다. 개인과 가족에 맡겨진 노인의 문제, 아니 '노인에 관하여'는 모두가 함께 논의할 대상에서 제외되고 있는 셈이다. '소외된 노인'은 가끔씩 일간지 귀퉁이를 장식하는 기사가 될 수는 있어도 사회적 이슈가 되지 못하고 있다. 이런 면에서 보면 그 텔레비전 광고는 어쨌든 노인을 생각하게 한 효과가 있는 것은 분명한 것 같다. 하지만 노인에 대한 인식 자체를 긍정적으로 만들었는지는 계속 드는 의문이다. 노인의 '존재'를 잊게 하는 역효과라고 할까?

노인을 바라볼 때 무엇보다 '그들의 아름다운 삶'을 위해서는 실질적이고 종합적인 노인 복지 체계가 갖추어져야 하고 그 속에서 노인이 자신 있게 일하고, 여유를 가지고 건강하게 삶을 영위해야 한다고 말한다. 당연한 말씀! 하지만 우선은 '아직 노인이 아닌 사람들'과 노인을 분리하는 우리의 일상부터 돌아봐야 하지 않을까?


(고근예 님은 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