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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박하순의 인권이야기

'비아 캄페시나'가 열어가는 길

올해 초 브라질에서 열린 세계사회포럼에 참가한 적이 있다. 운 좋게도 국제 소농 원주민 운동조직인 '비아 캄페시나'(농민의 길)의 초청을 받은 전국농민회총연맹(전농) 간부의 도우미로 부문별 사전대회의 하나인 농민대회부터 참석할 수 있게 되었다. 포럼기간 동안 우리처럼 '비아 캄페시나'의 공식 초청을 받은 200여명의 각국 농민운동 대표자들은 수도원에서, 브라질의 MST(땅없는 농업노동자들)를 비롯한 중남미의 5천여 농민들은 커다란 체육관에서 노숙을 했다. 이 '풍찬노숙'(風餐露宿)을 위해 어떤 칠레농민들은 3-4일이나 걸려 버스를 타고 왔다고 했다. 불편한 잠자리와 변변치 못한 식사에도 불구하고 각종 토론회와 문화행사가 풍성하게 개최됐다. 이들은 미주자유무역협정(ALCA 또는 FTAA)과 이라크전 반대시위의 주력대오이기도 했다.

이들은 늘 농업의 상징색인 녹색 모자를 쓰고 녹색 스카프를 두르고 다녔다. 최대 규모의 조직화된 대오였다. 지금은 정권의 성격이 변질되고 있지만 에콰도르와 브라질에서 이들 소농들에 힘입어 신자유주의에 비판적인 정권이 들어섰고, 볼리비아 선거에서는 반미·반신자유주의 기치를 내건 농민이 직접 출마해 선전했던 터라 사기도 충만해 있었다.

포럼기간 중 토지점거에 성공해 공동체를 건설해 소박한 행복을 누리고 있는 MST 정착촌을 방문해 1500여명이나 되는 이들과 함께 할 기회를 가졌다. 거기에는 이들이 건설하고자 하는 자유, 평등, 협동, 우애의 미래사회가 이미 있었다. 포럼이 끝난 뒤에는 토지점거를 준비하고 있는 대규모 비닐 판자촌을 돌아볼 기회를 가졌는데, 이들 역시 새로운 공동체를 꾸리게 될 앞날에 대한 희망에 가득 차 있었다.

이번 멕시코 칸쿤에서 열린 세계무역기구(WTO) 회의에 대한 거리의 반대세력 중 주력대오도 '비아 캄페시나'였다. 이번에도 허름한 지역 문화회관에서 사전대회를 열었고, 집단 노숙을 하고 공동으로 식사를 해결했다. 이들은 세계적인 곡물 메이저기업과 초민족적 (금융)자본의 이익을 대변하는 WTO에 대항하여, 그리고 미국-유럽연합의 신자유주의 세계화 공동지배에 맞서 토지에 대한 권리, 식량주권, 식품안전성, 유전자조작 반대, 생명특허에 대한 반대 등을 내걸고 싸우고 있었다. 농민이 주력인 한국참가단과 중남미의 소농 원주민이 없었다면 칸쿤투쟁은 아예 불가능했을 것이다.

신자유주의 세계화 반대운동에서의 '비아 캄페시나'의 주도성은 내년 초 인도에서 열리는 세계사회포럼에서도 여전할 것으로 보인다. '비아 캄페시나' 지도자 중의 하나인 온두라스 농민 대표에 의하면, '비아 캄페시나'에 가맹해 있는 인도의 한 농민조직의 규모는 천만 명에 이른다.

'비아 캄페시나' 운동은 자본주의가 채 발전하지 않은 나라나 지역의, 아직 소멸하지 않은 소농들의 허망한 몸부림에 불과한가? 최소한 멕시코에서는 그렇지 않다는 것을 멕시코의 한 인권변호사에게서 들을 수 있었다. "소농운동이자 원주민운동인 사파티스타 운동을 멕시코 시민사회의 90%가 지지한다. 노조는 부패했고, 제도혁명당에서 갈라져 나와 진보정당을 표방하는 민주혁명당도 가짜 좌파다. 사파티스타 운동은 상승하고 있다." 멕시코 운동세력의 주된 구호가 '사파타 비베 비베(만세 만세)'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다.

이렇게 국제 소농운동 조직 '비아 캄페시나'는 세계전역을 충분히 자본주의화하지 못한 채 위기에 빠져 신자유주의 세계화를 강요하고 있는 세계 자본주의의 강력한 비판자로 부상하고 있다. 여기에 이경해 열사의 죽음을 부여안은 한국의 농민운동도 함께 하고 있음에 주목해야 한다.

(박하순 님은 사회진보연대 집행위원장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