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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냉전 족쇄에 '묶인 발' 누구인가

현재 '친북인사', '반국가단체의 성원'이라는 냉전시대의 낙인이 찍힌 채 입국이 불허되고 있는 해외민주인사들은 1백여 명에 이른다. 이들은 군사독재의 광풍이 몰아치던 1970년대부터 해외에서 반독재 민주화운동과 통일운동에 헌신해 왔을 뿐만 아니라, 국내 민주화운동 지원활동과 양심수 석방운동에도 힘을 보태왔다. 하지만 이들의 석방운동 대상이었던 사람들이 대통령과 국회의원까지 지낸 지금까지, 북한 동포와 일본 조총련계 동포들조차 한국을 방문하고 있는 지금까지, 그들의 발은 여전히 냉전과 분단, 그리고 '겨울 공화국'의 역사가 만들어낸 무거운 족쇄에 묶여있다.

대표적인 예가 '재일한국민주통일연합'(의장 곽동의, 아래 한통련)과 산하단체인 '재일한국청년동맹'(한청)의 핵심 인사들. 한통련의 전신인 '한국민주회복통일촉진국민회의'(아래 한민통)이 '반국가단체'라는 게 그 이유다. 73년 민단 계열의 재일 한국인들이 모여 결성한 한민통은 의장으로 내정됐던 김대중 씨가 결성식을 일주일 앞두고 중앙정보부에 의해 납치되자, 김대중 구출운동과 반독재 투쟁에 앞장서 왔다. 그러나 박정희 정권은 78년 재일동포 유학생 김정사를 한민통의 지령을 받은 간첩으로 조작, 한민통에 법원이 발부한 '반국가단체'라는 꼬리표를 달아줌으로써 그들의 반독재 투쟁을 탄압했다. 현재 당국은 한통련이 이름만 바꿔 달았을 뿐 한민통과 같은 단체라는 이유로, 그리고 그들의 방북 경력을 이유로 '굴종의 서약'이나 다름없는 '준법서약서'를 제출하거나 국정원의 조사과정을 거치지 않는 한 입국을 불허하고 있다.

미국과 유럽 등지의 해외 유학생들과 60년대 중반 이후 박 정권의 '인력수출정책'의 일환으로 광부나 간호사로 독일에 파견됐던 동포들 가운데도 '반체제·친북 인사'라는 주홍글씨를 단 채 여권발급을 거부당하고 있는 이들이 있다. 1967년 고 윤이상 선생과 물리학자 정규명 박사 등 재독 유학생과 현직 교수들을 간첩으로 몰아 사형까지 구형했던 '동백림 사건'을 비롯, 잇따른 조작 간첩사건에도 굴하지 않고 이들은 반독재 투쟁의 불씨를 지펴왔다. 광주의 진실을 앞장서 알린 것도 이들이었고, 남북한 학문교류와 90년 '조국통일범민족연합'의 결성 등 통일운동의 역사에도 이들의 굵직한 발자국이 남아있다. 그러나 이들에게 부여된 주홍글씨는 아직도 지워지지 않고 있다.

이들 민주화운동 관련자 이외에 일본의 '조선적' 동포들 역시 '국적 전환(한국국적 취득)을 하지 않는 한 임시 여권을 발급해줄 수 없다'는 한국정부의 또 다른 '전향 요구'에 가로막혀 있다. 이들이 지금껏 조선적을 유지하고 있는 것은 '반한·친북' 성향의 표징에 다름 아니라는 냉전적 사고, 그리고 인간의 양심을 국가의 필요에 따라 개조할 수 있다는 국가권력의 오만이 이들의 자유로운 왕래를 가로막는 장해물이 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