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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젊음을 가둔 또 하나의 '감옥'

한총련 수배자, "나는 모든 관계 속에서 사라져버렸다"

경찰이 한총련 11기 대의원 중 일부를 소환한다는 방침을 정한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23일 한총련 수배자 인권실태가 민가협에 의해 발표됐다. 조사는 전체 수배자 158명 가운데 30명을 선정, '일대일 대면조사' 방식으로 진행됐고 김영삼정권 시절 수배된 7년차 장기 수배자까지 대상에 포함됐다.

조사결과에 의하면 경찰은, 수배자에 대한 탈퇴 회유와 협박과 함께 △동네 통장에게 "저 집 아들이 집에 있는지, 가끔씩 오는지 확인하라"고 지시 △경찰인 수배자의 아버지에게 시말서 요구 △혼자 사는 여동생의 집을 영장 없이 수색하는 등 수배자 가족들까지 괴롭혔다고 밝혔다. 민가협 채은아 총무는 "법원의 체포영장 발부 전에도 불구속 수사를 미끼로 한 경찰의 회유와 협박이 계속됐고 이것은 수배 중에도 계속됐다"며 "이는 수배자의 양심의 자유를 침해함과 동시에 한총련과 직접 관계없는 가족의 프라이버시권까지 침해했다"고 비판했다.

수배가 시작되어 생활공간이 학생회실 한켠으로 한정되면 문제가 더욱 심각해진다. 체포의 위험 때문에 응답자의 50%는 병원에 한 번도 가본 경험이 없고, 도감청이나 위치추적 때문에 핸드폰, 이메일은 다른 사람 명의를 빌려 개설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특히 여성의 경우 △생리중인데도 씻을 공간을 찾기 힘든 점 △속옷이나 생리대가 필요할 때 쉽게 구하기 힘든 점 △아무도 없는 학교 안에 혼자 있어야 할 때 느끼는 두려움 등 이중의 고통을 겪고 있다.

이런 차단된 생활 때문에 수배자들은 △주변 모든 사람들을 의심하게 되는 습관을 가지게 되거나 △문을 잠그지 않으면 잠이 오지 않거나 △형사들에게 체포되거나 총에 맞아 죽는 악몽을 꾸는 등 심리적 고립과 불안 상태에 놓인다. 수배로 친구들과 연락하기 힘들어진 한 2년차 수배자는 "순식간에 가족, 친구 등 모든 관계가 끊겨 나는 그들 속에서 갑자기 사라져버린 셈"이라고 서글픔을 토로했다.

이런 상황에서 대부분 20대인 이들은 졸업 및 사회진출 문제에 대한 불안감을 공통적으로 가지게 된다. 졸업에 필수적인 교생실습을 나가지 못하는 등 사회에 나갈 어떠한 사전 준비작업도 할 수 없는 것. 그럼에도 이들이 수배생활을 지속하는 이유는 무엇보다도 사상과 양심의 자유를 지키고 싶기 때문이다. 2년째 고통받고 있는 한 수배자는 "수배생활을 하기보다 구속되어 집행유예라도 받으면 더 많은 활동을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자수하는 것이 악법을 인정하는 행위이므로, 수배를 선택함으로써 국가보안법에 대한 불복종을 표시하고 싶다"고 밝혔다.

유영업 한총련 정치수배해제 모임 대표는 "수배자들의 고통을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정부가 약속해 온 수배해제 조치를 이행해야 한다"며 "수배해제의 폭 또한 누구는 되고 누구는 안 되는 식이 아니라 전면적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