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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이주영의 인권이야기

반전평화수업, 심판대에서 내려라!


반전평화 수업이 '반미사상 교육'이라 이념적 덧칠이 씌워진 채 심판대에 올려졌다. 심판자를 자처한 사람들이 내세우는 이유는 반전평화 수업이 아이들에게 미국에 대한 일방적이고 편향된 시각을 심어준다는 것이다.

물론 학교 현장에서의 교육이 일방적인 주입식이어서는 안 된다는 점에는 이견이 없다. 학생 시절의 나 역시 주입식 교육, 동원교육의 피해자였다는 점에서 이런 교육에 대한 반감은 누구 못지 않다. 숱하게 반공을 소재로 글짓기와 포스터 그리기를 해야 했던 기억은 그야말로 악몽이다. 서울을 비롯한 남쪽 땅을 물로 휩쓸어버릴 거라며 금강산댐 건설을 규탄하기 위해 전교생이 학교 운동장에 모여 머리에 띠 두르고 집회를 했던 장면은 씁쓸한 코미디였다.

그러나 오늘날 반전평화 수업을 흠집내는 데 핏대 올리고 있는 이들이 진정 일방적 주입식 교육의 부정적 영향을 우려하고 있는 것일까? 나는 그렇지 않다고 본다. 그들은 과거부터 현재까지 면면히 이어져오는 일방적인 반공 친미 교육에 대해서는 한마디 문제제기 않던 이들이기 때문이다. 심지어는 스스로 그러한 권위주의적 교육의 전달자를 자처했던 사람들이기도 하다.

그런 사람들이 왜 유독 반전평화 수업에만 두 눈 부릅뜨는 것인가? 오히려 그들은 영원한 우방국이라고 줄곧 가르쳐왔던 미국이 이번 이라크 전쟁에서 명백한 침략국가임을 아이들이 직시하게 되는 것에 지레 겁먹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들은 "아직 미성숙한 아이들인데…"라며 짐짓 아이들을 걱정하는 체 한다. 그러나 아무리 '미성숙'한 아이들이라도 현실에 대해 알 권리가 있거니와, 아이들이 수업 시간에 주어진 정보만으로 세상을 판단할 정도로 실제 '미성숙'하지도 않다.

이쯤에서 우리 솔직해지자. 오늘날 아이들에게 정말로 부정적인 영향을 주는 것은 반전평화 수업이 아니라 전쟁 그 자체가 아닌가. 강대국이 자국의 이익을 위해 약소국을 침략해도 용인되는 현실이야말로 아이들을 멍들게 하는 것이 아닌가. 전쟁에 반대하는 것이 옳지만 국익을 위해서는 전쟁을 지지해야 한다고, 즉 힘센 자에게는 굴종하는 것이 살아남는 처세법이라고 가르치는 이 현실이야말로 아이들을 가치관의 혼란 상태에 몰아넣고 있지 않은가.

내가 아는 한 초등학교 교사는 평소에 아이들에게 서로 싸우지 말라고 가르쳤는데 이라크 전쟁을 보며 너무 난감하던 차에, 전쟁의 포화 속에 있는 이라크 친구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과 선물을 글과 그림으로 표현해보라고 했다고 한다. 그는 얼마 전 이 '반전평화수업' 때문에 교육청 지시에 따라 교장 앞에 불려 가는 곤욕을 치러야했다.

인권과 평화, 그리고 모든 사람들이 추구해야 할 보편적 가치들이 휴지조각처럼 취급되는 현실에 과연 교육이 침묵해야 하는가. 그러한 교육은 '죽은 교육'에 다름 아니다. '정치 중립'이란 이름으로 죽은 교육을 요구하지 말라. 진실로 아이들을 위한다면 약육강식이 판치는 세상부터 바꿀 일이다.

(이주영 님은 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