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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예고된 노동자 분신은 없었지만..

삼성 SDI 악명높은 노동탄압, 분신 부를 수도


지난달 25일 오후 10시께 삼성 SDI 공장이 있는 경남 언양의 한 아파트 주변에 신분을 밝히지 않은 한 노동자의 '분신 예고' 유인물이 뿌려졌다. 유인물에는 "명예퇴직이라는 가면을 쓰고 휘둘러온 삼성 SDI의 일방적인 구조조정을 이대로 좌시할 수 없"으며, "삼성 SDI 노동자들의 민주노조 설립을 위해 오는 4월 18일 회사 앞에서 분신을 감행하겠다"는 내용이 담겨있었다.

예정된 18일, 다행히 분신은 시도되지 않았고 유인물 속 주인공의 실체도 밝혀지지 않았다. 그러나 이 사건을 그저 해프닝으로만 넘길 수는 없다. 삼성의 악명 높은 강제 구조조정과 무노조 정책이 계속되는 한, 분신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에 내몰릴 노동자들은 또다시 생겨날 수 있기 때문이다.

18일 언양 삼성 SDI 공장 앞에서 만난 해고 노동자들은 "삼성의 노동탄압은 상상을 초월한다"며 치를 떨었다. 해고 노동자들에 따르면, 98년이래 삼성 SDI 언양 공장에서 8천여 명에 달하는 노동자 중 3천5백여 명이 '희망퇴직'이라는 이름으로 사실상 강제 해고됐다. 그리고 그 중 70% 이상은 사내하청 노동자로, 사실상은 불법파견 비정규직 노동자로 재고용 됐다. 이러한 삼성의 구조조정은 노동자들을 음독·투신 자살로까지 몰고 갈 만큼 악랄한 것이었다.<본지 2002년 1월 3일자 참조>

지난 2001년 12월에는 삼성 SDI 언양 공장에서 18년을 근무한 노동자 김명동 씨(당시 43세)가 사측의 강제퇴직 압력에 뇌경색으로 쓰러진 뒤 오른쪽 팔다리가 완전 마비되고 언어능력까지 상실하는 일이 발생했지만 삼성은 산재처리마저 거부했다.

99년 9월 회사의 강압에 못 이겨 자필 사직서를 쓰고 나온 김모 씨(여, 29세). 93년부터 삼성SDI 언양공장에서 모니터 보정 작업을 해온 김 씨는 98년 사측의 끈질긴 강요와 회유에 사내하청 노동자가 되었고, 그 무렵 우울증과 함께 걷기 힘들 정도의 근골격계 질환을 앓기 시작했다. 그러나 삼성은 산재처리는커녕 오히려 "나가라"며 자진 사퇴를 종용했고, "차라리 해고시켜 달라"는 요구에도 "해고는 안된다"고 응수했다. 김 씨는 "삼성이 말하는 희망퇴직이란 바로 이런 것"이라고 말한다. 지금도 우울증 치료를 받고 있는데다 "근골격계 질환 때문에 다른 일을 할 수 없는 상태"라는 김 씨는 "돈이 없어 병원에도 갈 수 없을 땐 정말 절망적이다"고 고통스럽게 털어놨다.

이러한 일방적인 구조조정과 부당노동행위를 마음대로 저지르게 위해 삼성이 끈질기게 고수하고 있는 것이 바로 '무노조' 신화다. 언양에서 만난 삼성 SDI 해고노동자들은 "삼성의 무노조 신화는 '복수노조 금지 조항을 악용한 어용노조 선점', '노조설립 지도부에 대한 납치·감금·폭행' 등 온갖 냉혹한 수법이 총동원돼 이루어지고 있다"며 분노를 토했다.

98년 해고된 송수근 씨가 대표적 사례. 당시 삼성 SDI는 노사협의회 노동자 위원장 당선이 확실시되던 송 씨가 구조조정에 반대하자 그를 해고했고, 그 후 부당해고에 항의하는 그를 직원과 깡패를 동원해 납치·감금까지 하며 탄압했다. 노조설립에 뜻을 함께 했던 동료 노동자들 역시 사직을 강요받거나 해외발령을 받았다. 그러나 삼성의 이러한 범죄 행위는 모두 무혐의 처리됐고, 오히려 정당한 권리 행사를 통해 삼성의 불법행위를 폭로한 송 씨는 명예훼손과 업무방해 혐의로 현재 두 번째 수감생활을 하고 있다.

삼성의 무노조 신화는 이러한 전근대적 노동탄압에 희생당한 수많은 노동자와 그 가족들의 고통 위에 세워진 것이다. 이러한 삼성의 노동탄압이 계속되는 한, 18일 예고됐던 분신은 언젠가 현실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