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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박영희의 인권이야기

장애여성 선희의 4월


김해공항엔 비가 내리고 있다. 그녀의 목소리가 아직 귓가에 맴돌고 있다.

"내가 가야겠니?"
"응, 언니가 와줬음 좋겠어. 언니가 보고 싶어"
"알았다. 내가 갈게."

난 많은 일들을 뒤로 미루고 황급히 부산으로 왔다. 그녀의 목소리가 심상치 않다는 느낌 때문에 서울서 가만히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까르르 넘어갈 듯이 웃던 그녀의 명랑성은 자타가 인정할 만큼 대단했다. 그러던 선희의 목소리에 기운이 하나도 없고 울기만 한다.

선희(가명, 척추만곡증, 37세, 그녀에겐 딸 하나와 아들이 있다)는 얼마 전부터 다리가 아프다고 하더니 류마치스 관절염이라는 결과를 받았다.

비장애남성과 결혼한 선희는 남편 집안에 아들이 없다는 이유로 임신을 했다. 큰딸을 낳을 때에도 목숨을 걸어야 할 만큼 모험을 해야만 했었다. 그녀의 작은 신체 때문에 태아가 성장하면서 어머니의 폐를 압박하였고, 산달이 가까워지면 호흡하는 것조차 힘들 지경이 되었다. 결국 10달을 다 채우지 못해서 미리 제왕절개로 큰딸을 낳았었다. 그랬었는데 또 아들을 낳겠다고 자신의 목숨을 건 모험을 하는 것이다.

주변의 만류를 뿌리치고 아들을 꼭 낳겠다는 일념뿐인 그녀의 마음을 이해할 수는 있었다. 비장애 남성과 결혼할 때, 시가 쪽에서 많은 질타와 원망들이 이후 그녀에게 모두 상처로 남았다. 그리고 기를 쓰면서 아들을 낳겠다는 이유도 시가 쪽으로부터 아들을 낳음으로 인정받겠다는 것만 같았다. 결국 아들은 낳았지만, 그녀의 폐는 무리가 되어 기능이 저하되어 밤에는 산소 호흡기를 껴야만 잠을 잘 수 있는 지경이 되었다. 이런 상황에 관절염으로 더 외출이나 자신을 위해 무엇을 해보려는 의지도 가질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렇게 살아오면서 자신감도 상실하고 자신이 가족들에게 짐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기 시작한 그녀는 심한 우울증 증세를 보이고 있었다. 지금은 병원 치료를 받고 있는 중이다.

선희를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다. 선희와 같은 모습은 장애여성들 사이에서 쉽게 발견하게 된다. 장애를 가진 몸 때문에 환영받을 수 없는 사람이고, 또 여성이기 때문에 아이를 낳아야 되고, 아이를 양육해야 하고 가사의 많은 부분을 책임지고 살아야 한다.

선희가 지금 아픈 것은 그녀 혼자만의 문제가 아니다. 이 땅에 장애여성들이 대부분은 이와 같은 문제들을 가지고 있다. 이제 이러한 얘기들을 장애여성들이 스스로 말을 하게 되면서 그만큼 치유도 빠르게 될 것이다.

하루라도 빨리 선희가 회복되길 바란다. 진심으로...

(박영희 님은 장애여성공감 대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