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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연재> 인간답게 살 권리 - 하월곡동 이야기 ③노동의 권리

죽도록 일해도 가난만 물려줄 뿐…

하월곡동 산2번지. 주민들의 삶은 궁색하고 비참하지만, 나름의 삶을 이어가기 위해 사람들은 일하고 또 일한다. 일용할 양식을 얻기 위한 매일 매일의 노동이 결코 수월하지는 않지만….

중학교와 초등학교에 다니는 두 딸을 둔 솔이 엄마는 얼마 전까지 하월곡동의 한 영세 봉제공장에서 일했다. 결혼 전 한복재단 기술을 익혔던 그는 다행히 한 달에 100만원 정도의 돈을 벌 수 있었지만, 기술이 없는 사람들은 하루 10시간씩 먼지 자욱한 공장에서 일하고도 고작 50만원 남짓을 월급으로 받는다고 한다. 주말 근무나 야근도 예삿일이지만 그렇다고 버는 돈이 늘어나는 것은 아니다. "수당만 준다면 늦은 시간까지라도 힘든 줄 모르고 일할 수 있지만, 많은 공장들이 야근수당 없이 자정 가까운 시간까지 일을 시킨다"고 솔이 엄마는 말한다.


"잡부는 산재보상도 없어"

솔이 아빠는 하월곡동의 몸 성한 남자들 대부분과 마찬가지로 건설현장을 일터로 삼는다. 원래는 세공기술자였지만 12시간씩 맞교대로 일해야 하는 열악한 작업환경을 피해 몇 년 전부터 '그나마 나은' 건설노동을 하게 됐다. 하지만 건설일용노동자로서의 삶 역시 고되긴 매일반이다. 휴일이나 월차휴가는 언감생심. 일감이 주어지는 한 열심히 일해 보지만, 아무리 건물을 올리고 또 올려봐도 솔이 아빠 자신의 집은 아직 어디에도 없다.

솔이 아빠에게 무엇보다 두려운 것은 산업재해다. 대부분의 회사는 산재보험에 가입되어 있지 않고, 산재를 당한 경우에도 기술자가 아닌 잡부의 경우는 어영부영 넘어가는 때가 많다. "회사는 산재처리를 거의 해주지 않는데, 산재 사건이 있으면 공사를 하청 받을 때 그만큼 손해를 보기 때문이다. 보통 한 달에 한두 명은 꼭 다치지만, 잡부의 경우는 다쳐도 약간의 병원비만 보상받는다." 또 다른 건설노동자 장춘기(37) 씨의 말이다.


여섯 식구, 한달 60만원으로 버텨

홍규해(37)씨네 여섯 식구는 요즈음 최저생계비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60만원으로 한 달을 버텨낸다. 홍 씨가 2년 전부터 해오고 있는 건물 방수작업의 특성상 날씨가 추워지면 일감이 뚝 끊어지기 때문이다. 그는 할 수만 있다면 기술을 배워 안정적인 직장을 갖고 싶지만 "배운 게 짧고 나이가 많아서 시켜주지 않을 것"이라고 지레 자신 없어 한다.

홍 씨의 우려는 현실적이다. 한 사회복지사는 "직업훈련을 받는 것 자체가 어렵고, 설사 훈련을 마친다 하더라도 질이 낮은 노동력이라고 회사에서 기피할 것이 뻔하다"고 말한다.

노동권의 박탈과 절대적 빈곤은 어깨를 걸고 대를 이어 찾아든다. 전라도 빈농의 아들로 태어나 초등학교도 마치지 못한 채 서울에 온 김(37) 씨. "닥치는 대로 일하면서" 밑바닥 인생을 전전한 그는 여러 차례 안정된 직장을 찾기 위해 애를 써봤지만 무학에, 변변한 기술도 없는 터라 매번 실패하기 일쑤였다.

그는 5년 전 뜻하지 않은 병을 얻어 자리에 누웠고, 웬만큼 거동이 가능해진 지금도 할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다. 기초생활보장비 45만원으로 근근히 살아가고는 있지만 "이 돈으로 월세, 난방비, 세금, 약값 등을 내고 나면 담배 한 갑 사기도 어렵다"고 한다. 그에게 마지막 남은 희망은 아들이다. 아들만큼은 고등학교라도 졸업해 자신의 전철을 밟지 않기를 바라지만, 벌써 몇 달째 학교에 나가질 않는다는 아들의 미래도 밝아 보이지만은 않는다.

"모든 사람은 노동의 권리, 자유로운 직업 선택권, 공정하고 유리한 노동조건에 대한 권리 및 실업으로부터 보호받을 권리를 지닌다"고 세계인권선언은 말하고 있다. 하지만 그 말은 하월곡동 산2번지의 현실과 충돌하면서 공허한 메아리로 남는다. 가난의 대물림 속에서, 빈곤의 악순환 속에서 하루하루를 견뎌내고 있는 산2번지 주민들에게 '노동의 권리' 운운하는 말은 그저 사치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