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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수해철교 복구, 죽음의 곡예

철도노동자 추락사…휴일없는 작업, 추락방지 안전망도 없어


수해로 끊어진 철교 복구작업 중 한 철도노동자가 추락해 사망하는 일이 발생했다. 당시 작업현장에는 추락방지용 안전그물망조차 없어 사고 위험이 매우 높았던 것으로 확인됐다.

25일 오후 3시 40분경 철도노동자 정의영 씨가 강원도 동해 미로역과 도경리역 사이 오십천 2교량에서 보수작업을 하다 12미터 아래로 추락해 사망했다. 지난 8월 31일 내린 폭우로 끊어진 철교를 복구하기 위해 노동자들은 기둥을 다시 세우고 자갈, 침목, 레일 등을 새로 까는 작업을 진행 중이었다. 철도청에 따르면, 정 씨는 철교 위에서 크레인으로 올린 자재를 내리던 중 몸의 중심을 잃고 추락했다.

철도청은 12미터 높이 교량 위에서 아슬아슬한 작업을 진행하면서도 안전그물망 등을 설치하지 않아, 노동자들은 추락의 위험에 방치돼 있었다. 노조의 서재열 시설국장은 "높은 곳에서 작업을 할 땐 안전그물망을 설치해야 하는데, 현장에 그런 것은 없었다"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철도청 관계자는 "안전그물망은 없었지만, 안전대를 아침에 구입해 현장에 지급했는데 정 씨가 착용하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라고 말했다. 안전대는 헛딛더라도 바닥에 떨어지지 않도록 몸에 묶는 띠를 말한다.

그러나 노조의 이태영 산업안전차장은 "교량엔 안전대를 묶을 곳이 마땅치 않다"라며 "현장 상황에 맞지 않는 보호구를 미착용했다고 개인 과실처럼 말하는 것은 철도청이 사고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앞서 철도청 관계자도 "10미터 넘는 높고, 폭이 좁은 곳에서 일해야 하니까 사실 위험하긴 했다"라고 작업환경의 위험성에 대해 인정했다.

사고 위험은 이번만의 일이 아니다. 이 산업안전차장은 "안전시설을 설치해 작업한다는 개념 자체가 철도청엔 없다"라며 "교량 작업을 할 땐 안전그물망을, 모든 터널엔 작업을 하다 대피할 수 있도록 대피소를 설치해야 한다고 노조가 주장했는데 철도청이 계속 받아들이지 않았다"라고 밝혔다. 철도노동자들이 산재로 사망하는 일이 유난히 잦은 것은 이와 무관하지 않다. 지난 한해 업무와 관련 사망한 노동자의 수는 34명, 올해는 9월까지 6명이 사망했다.

인력 충원을 하지 않고 휴일 없이 수해복구 작업을 강행했던 것도 이번 사고 원인 중 하나다. 노조의 이 산업안전차장은 "수해복구를 위해 지속적으로 장시간 작업을 하다보니 몸의 피로가 심하고, 집중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시설물 관리·보수 업무를 하는 노동자들의 수는 5년 동안 9백여명이 인원감축돼 현재는 2천4백명. 반면, 단선철로가 복선이 되고 또 복복선이 되면서 시설은 계속 늘어 노동자 한 명이 담당해야 할 작업량은 훨씬 늘었다.

최근처럼 집중적인 복구작업을 해야할 땐 노동자들이 휴일도 없이 일할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노조의 서 시설국장에 따르면, 노동자들은 지난 한 달 간 아침 7시에 출근, 밤 9시 늦게는 새벽 2시까지 일을 하고 일요일에도 쉬지 않았다. 노조의 백남희 선전홍보국장은 "앞으로 이번 사고에 대한 철도청의 책임을 규명해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혐의로 고발할 것"이라고 밝혔다. 노조는 이번 사고에 대해 현지 조사를 진행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