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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이우갑의 인권이야기

그들은 알고 있을까?


누구에게나 소중한 것이 있다. 그리움이 밴 오래된 사진, 사랑하는 사람으로부터 건네 받은 귀퉁이 해어진 엽서 한 장, 방황의 시간이 묻어 있는 일기장. 그런 소중함은 한 개인에게만 있는 것은 아니다. 담배 이름으로만 남은 은하수, 꿈 같은 기억으로만 반짝이는 반딧불이, 시리도록 찬 물 속의 발 빠른 가재. 함께 살아갈 땐 무심하다 막상 그것들이 사라졌을 때 그 사라진 아름다움이 얼마나 우리 삶을 풍요롭게 했던가를 새삼 깨닫게 된다. 하물며 그 소중함이 눈이나 귀로 느끼는 아름다움을 넘어 우리 삶의 가치를 되새겨 주고 희망을 불러 주는 것이라면 더욱 그러하리라.

수녀님. 간간이 거리를 지나다 만나는 수녀님들을 보면 종교의 같고 다름을 떠나 기분이 좋아지고 한편으론 어지러운 세상을 살면서도 '아직 희망이 있구나'하는 느낌을 갖기도 한다. 그들이 지니는 맑은 미소, 혹은 많이 드러나진 않아도 숨어서 건네는 따뜻한 사랑의 손결. 같은 세상을 살면서도 저렇게 깊고 맑게 살수 있구나 하는 부러움이 한켠으로 스며든다. 우리 시대의 많지 않은 소중함 중 하나다. 그런 소중함 덕분에 그 이전 어느 독재 정권에서도 신부들이나 스님을 연행하고 구속하는 일은 있었어도 수녀님들을 검문하거나 연행하는 일은 없었다. 그들이 지닌 미소는, 그들이 사는 희생은, 그들이 꿈꾸는 아름다움은 우리 모두에게, 심지어 독재자들에게조차 소중했기 때문이다.

지난 5월 14일, 평화집회에 참여한 두 분의 수녀님이 다른 17명과 함께 종로 경찰서에 연행돼 수모를 겪었다. 수녀님들은 29시간 이상 유치장에 감금되어 있었다. 단지 평화를 원하는 마음으로 신고된 집회에 참석한 일 외에 그들이 불법행위를 한 것도 아니었고 폭력을 행사한 것도 아니었다. 사지를 들려 경찰서에 연행된 후에도 수녀라고 신분을 밝히고 특별 대우가 아니라 합법적인 절차를 요구했음에도 경찰은 옷을 벗으라고 요구하고 자해 위험이 있다며 그들 목에 걸려 있던 십자가를 벗겨 냈다.

참담한 마음이다. 우리 시대에 사람들이 애써 지켜온 소중함을 또 한차례 잃어버린 부끄러운 일이다. 수녀님들이 힘이 세서 소중하게 여겨졌던 것은 아니다. 수녀님들이 돈이 많다거나 지위가 높아서 우리가 그들에게 눈웃음을 보냈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스스로 가장 약해져서 약한 자와 함께 살기에, 스스로 가장 가난해져서 가난한 이들과 함께 살기에, 스스로 낮아져서 진정한 아름다움이 어떤 것인가를 우리에게 보여 주었기에 그들은 우리에게 하늘의 별들만큼이나 아름답고 소중한 이들이었다.

약하다고, 대항할 힘이 없다고, 높은 사람이 아니라고 수녀님들을 연행하고 윽박지르고 유치장에 가둬놓은 경찰들. 그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그들이 알까? 그들이 우리 모두의 소중한 아름다움을 손상시켰다는 것을. 그들이 수녀님들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마음을 찢어지도록 아프게 만들었다는 것을. 그들은 알고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