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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육이은의 인권이야기

청소년의 입장에서 이야기하자


고교시절 청소년 인권운동을 하면서 들었던 고민 중 하나는 기성세대와 내가 '청소년 보호'라는 취지를 인정하면서도 서로 정반대의 주장을 한다는 점이었다. 학교 선생님들과도 그랬고, 토론회에서 만난 많은 어른들이 그랬다. 그때는 왜 '청소년 인권'이라는 동일한 사안을 놓고 이렇게 대립을 하게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 돌이켜보면, 그것은 청소년 인권을 바라보는 관점의 차이였던 것 같다.

청소년을 바라보는 사회의 일반적인 시각은 보호의 대상, 규제의 대상이라고 할 수 있다. 대표적인 경우로 청소년 보호법을 들 수 있다. 청소년 보호법은 보호라는 이름 아래 청소년의 여러 가지 기본적인 권리를 제한하고 있는데, 그 근거는 청소년은 아직 미성숙하므로 기성세대가 정한 특정 틀 안에 있어야 하며 이를 위해 기본적인 인권은 유보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과연 이러한 것들이 청소년의 인권을 보호하고 있는가? 청소년 보호법은 청소년의 권리를 제한하며 그 근거 중 하나로 '미성숙'을 든다. 그러나 청소년은 늦어도 약 15세 가량이 되면 성인과 동등한 판단력을 획득하며, 그 이후의 차이는 권리 행사 경험의 차이에 기인한다(최윤진, 1999). 즉 청소년 보호법의 논리는 '청소년은 권리 행사 경험이 부족하므로 권리행사를 해서는 안 된다'의 논리인 것이다. 오히려 청소년을 보호하자고 만들어진 법이 청소년의 권리 행사 경험을 가로막음으로써 청소년의 건전한 성장을 저해하고 있다고도 볼 수 있다. 그리고 설사 청소년이 미성숙하다 하더라도, 인권은 보편적인 것으로 판단능력의 유무에 따라 갖는 것이 결코 아니며, 보호를 빌미로 일방적인 성인의 잣대만을 강요하는 것은 인권을 심각하게 침해하고 있는 '권위적 간섭주의'라고 할 수 있다.

이렇듯 청소년 보호라는 취지에서 만들어진 정책들이 청소년의 인권을 더 심각하게 침해하고 있는 근본 원인은 청소년을 바라보는 관점에 기인한다. 하지만 비단 청소년뿐 아니라 모든 인간은 보호받을 권리가 있으며, 청소년도 그 중 하나일 뿐이다. 설사 청소년이 성인에 비해 판단능력이 뒤떨어진다 하더라도 인권은 그런 능력의 유무에 관계없이 갖는 권리다. 청소년이 사회적으로 약자의 입장임을 감안한다면 보호의 권리가 더욱 확장되어야 하지, 보호의 객체로서 권리를 제한해서는 안 된다.

산적해 있는 청소년 문제, 교육문제는 이러한 관점의 전환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그 동안 우리의 청소년 정책, 교육 정책은 막상 그 주체인 청소년을 제외시킨 채 기성세대의 일방적인 잣대로 모든 것을 재단해 왔다. 청소년은 마치 언제 어디서든 범죄를 일으킬지 모른다는 '예비 범죄자'식의 전제 아래 청소년을 바라보는 습관을 버리고, 자기 삶의 주체, 인권의 주체라는 인식 하에 청소년을 바라보지 않는 한 우리 사회의 청소년은 언제나 주변인으로서 방황할 수밖에 없다.

(육이은: 전국중고등학생연합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