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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병역거부를 바라보는 차가운 시선

병역거부 반대자들, 변협 토론회에서 독설잔치


"범법자에게 변명의 기회를 주는 게 말이나 되냐?" 객석 여기저기서 고함이 터져 나왔다.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 오태양 씨가 발언을 시작하자, 재향군인회 소속 초로의 남성들이 집단적으로 항의하기 시작했다. 사회자의 제지가 있었지만 분위기는 계속 험악해졌고, 결국 오태양 씨는 2-3분 정도의 진술기회를 포기한 채 마이크를 내려놓았다.

25일 대한변호사협회 주최로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양심적 병역거부와 인권' 토론회에서는 '양심적 병역거부자'를 대하는 편견과 적대적 시각이 여과없이 표출됐다.

"병역거부가 인권 문제로 오도되는 것이 안타깝다"고 운을 뗀 박상원 병무청 감사관은 "병역거부는 대다수 국민에 대한 배신행위"라고 비난했다. 최정석 재향군인회 안보연구소장은 '음모론'까지 들고 나왔다. "양심적 병역거부와 대체복무제 주장은 국가안보의 근간을 뒤흔들기 위한 거대한 전략의 일환이며 반국가?반사회적 흐름"이라는 것이다.

김병렬 국방대학원 교수는 "김정일의 대남적화통일전략이 온존하는 상황에서 양심적 병역거부를 주장하는 것은 철없는 주장"이며, "양심적 병역거부라는 용어를 쓰는 의도는 선한 마음이 박해를 받고 있다는 인상을 주어 동정을 사고자 하는 것"이라고 비난했다. 객석에서 마이크를 잡은 70대의 재향군인회원은 "너희가 6?25를 겪어 봤느냐"는 말로 모든 토론을 일축하기도 했다.


소수자들의 인권 앞에 놓인 견고한 장벽 절감

이날 토론회엔 한인섭 서울대 법대 교수, 오재창 변호사,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 정진우 목사, 효림 스님 등이 병역거부권 찬성측 패널로, 최필재 국방부 법무관, 김병렬 국방대학원 교수, 최정석 재향군인회 안보연구소장, 박상원 병무청 감사담당관, 최삼경 목사(한기총 이단사이비문제상담소장) 등이 반대측 패널로 참석했다. 정부측 관계자를 비롯해, 학계, 법조계, 종교계 등에서 다양한 패널이 참석한 만큼 심도깊은 토론이 기대됐으나, 일부 인신공격성 발언과 흑색선전 등은 방청자들을 적잖이 실망시켰다.

박상원 감사관은 "오태양은 더 이상 군대 연기가 안 되니까 결국 기피를 선택한 비양심적 인물"이라고 공격했고, 최삼경 목사는 인권단체들을 향해서도 "범법자의 인권을 옹호한다"고 비난했다. 박 감사관은 또 찬반 토론자의 수가 균형을 이룬 데 대해 "찬반양론이 팽팽한 것처럼 토론회를 구성한 것은 유감"이라며 주최측을 공격하기도 했다.

한편, 이날 토론장에는 군복과 베레모를 착용한 수십명의 재향군인회 회원들이 참석해 이목을 끌었다. 병역거부권에 대한 반대입장이 발표될 때마다 환호성을 지르던 이들은 시간이 지나자 하나둘씩 자리를 떠, 토론회 마무리에 이르러서는 한 사람도 자리를 지키지 않았다.

수십년 만에 겨우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소수자들의 인권' 앞에는 아직도 높고 견고한 장벽이 가로막혀 있음을 실감하게 한 토론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