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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국정원 직원, "사찰은 통상적인 일"

범민련 간부 집 앞 사진촬영, 경찰 비호 아래 도망쳐


지난 25일 국가정보원(아래 국정원) 직원이 지난해 '평양축전 방북단 사건'으로 재판을 받고 있는 범민련 간부를 사찰했던 사실이 뒤늦게 확인됐다.

이날 범민련 남측본부 김세창 조직위원은 경기도 천안에서 서울 통인동으로 이사를 하고 있었다. 오후 4시경 김 위원의 이삿짐을 실은 차가 통인동에 도착했을 때, 김 위원은 이사할 집 대문 앞에서 '국정원 직원'(아래 직원)이 사진기를 들고 서성이는 모습을 목격했다. 김 위원은 지난해 8월 '평양축전 방북단 사건'으로 국정원에서 조사를 받을 당시 보았던 그 직원을 기억하고 있었던 것.

김 위원은 곧바로 직원에게 무슨 일을 하고 있었는지 따지며 필름을 달라고 요구했다. 이에 직원은 처음에는 "지나가는 길이었다", "대문하고 집을 몇 장 찍었다"고 답하다가, 나중에는 "내가 알아서 필름을 지우겠다", "사진기를 잘 못 만진다"라며 횡설수설했다. 김 위원과 설왕설래하는 과정에서, 직원은 결국 필름을 지웠다.

이어서 김 위원은 불법 민간사찰 문제에 대해 집중 추궁했으나, 직원은 "이런 일은 통상적으로 하는 일"이라며 오히려 당당했다. 지난해 '평양축전 방북단 사건'으로 구속·기소된 후 지난달 4일 보석으로 풀려난 김 위원은, 법원도 증거인멸이나 도주의 우려가 없다고 판단한 사람에 대해 사진을 찍으며 사찰하는 국정원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이에 김 위원은 '직원이 불법 민간사찰을 하며 자신의 인권을 침해했다'고 판단, 직원을 인근 옥인 파출소로 끌고 갔다. 그리고 "불법 민간사찰을 하고 있던 현행범을 잡아왔다"며, 파출소 경찰들에게 신원조회를 의뢰했다. 하지만 경찰들은 "국정원은 경찰의 상급기관이기 때문에 신원조회를 할 수 없다"는 둥, "파출소는 방범과 교통업무를 위주로 하기 때문에 우리에게 따지지 말라"는 둥 오히려 직원을 비호했다.

김 위원과 경찰들간의 고성이 40분 정도 오가는 과정에서, 직원은 화장실에 간다는 핑계를 대고 도망쳐 버렸다. 경찰 비호 아래 직원이 도망치는 바람에 제대로 확보된 증거가 없어, 현재 김 위원은 국정원의 사찰행위에 대해 소송을 제기할 엄두조차 내고 못하고 있다.

현 국정원법 제3조 1항 3호에 따르면, 국정원은 국가보안법 위반죄에 대해 수사를 할 수 있다. 형사소송법 제199조는 수사에 관해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필요한 조사를 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국정원은 이를 근거로 민간사찰을 합리화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김승교 변호사는 "이 조항들은 보다 엄격히 해석될 필요가 있다"며, "수사가 개시되기 위해서는 범죄혐의가 객관적으로 인정될 만한 상당성이 갖추어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렇지 않다면 평소 모든 국민에 대해 사찰을 해도 '수사를 위한 조사'로 정당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김 변호사는 "(김 위원은) 수사가 끝나 재판이 진행 중인 상태"라며, "상식적으로 (김 위원에 대한) 수사의 필요성이 있다고 볼 수 없다"고 사찰의 부당함을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