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운동사랑방 후원하기

인권하루소식

류은숙의 인권이야기

"학연이 있으신가 보죠?"


이런 저런 일로 낯선 얼굴들을 대하는 자리, 서먹한 분위기 녹이기는 주변의 아는 사람을 캐물어 가거나 학연으로 대표되는 출신성분 따지기가 제일이다. 그날도 그랬다. "아무개를 아시나요?"라는 질문을 받았다. 단박에 든 느낌은 "아, 같은 대학 나왔구나"였다. 여느 때 같으면 "아무개 대학을 나오셨나 보죠?"라고 했을 텐데, "학연이 있으신가 보죠?"라고 물었더니 상대방과 주변 사람들은 멋 적은 웃음을 지었다.

대학을 나왔다고 '출신학교'와 '학번'으로 말문 트기는 몸에 밴 습성이었다. 어느 날부터인가 의식적으로 묻지 않고 대답하지 않도록 노력하고 있지만 쉽지는 않다. 학연이 '없는' 사람, 또는 학연이 '다른' 사람과 서슴없이 구별짓기를 하는 이런 행위에 문제를 느낀 것은 부끄럽게도 10여 년을 그렇게 행동한 후였다.

몇 년 전 인권교육을 진행하던 자리에서 한 참가자가 이런 말을 했다. "우리 사회에서 학벌은 천부인권인 것 같아요." 뒤통수를 세게 얻어맞은 느낌이었다. 학벌을 확인한 후 '역시나' 안도하고, '그럼 그렇지' 낙인찍고, '의외인 걸' 당황하며 사람을 평가하던 내 속을 들켜버린 듯 화들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문제는 이런 식의 사람 평가가 나 개인의 악취미나 잘못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가 적극적으로 그것에 '공모'하는데 있다. 공모는 치밀하고도 집요하여, 직장과 결혼 뿐 아니라 교육의 목적과 방법을 지배하며, 일상 생활의 구석구석에서 대다수를 휘두르고 자빠뜨리고 밀어내기에 거리낌이라곤 없다. 거기에는 '다른' 능력에 대한 고려가 없으며, 쉽게 골라내고 쉽게 배척할 수 있는 편의가 판을 친다.

'특정대학 출신이 아니면 능력이 없다'는 명제 아닌 명제를 신분증으로 삼는 사회가 건강할 수 없다. 이런 과도하고 부정적인 일반화에 근거하여 사회 구성원 대다수를 사회적인 혜택이나 활동으로부터 배제시키는 것은 편견에 근거한 차별임에 틀림없다. 다양한 능력의 차이를 고려하지 않는 잣대로서 노골적으로 구별하고 배척하는 것은 인간 개개인의 가능성을 거부하는 행위이다.

최근 이력서에서 학력란을 폐지하자는 발언이 된서리를 맞고 있다. 학벌과 학력이 동의어처럼 쓰이는 사회이다 보니 '손댈 걸 대야지', '넘볼 걸 넘봐야지'라는 식의 반응이 넘치고 있다. 이런 반응에선 체념이 아니라 불순함이 느껴진다. 특권을 빼앗기지 않으려는 불순함 말이다. 학벌이 경제력에 따라 재생산되고 있고, 배타적인 특권을 누릴 수 있는 신분으로 기능한다는 빨간불이 켜진지 오래다. 뿌리깊은 '공모'로부터 탈출하여 편견 없이 사람을 볼 수 있는 '자유'를 얻고 싶다.

(류은숙은 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