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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노바티스, 글리벡 원가의 30배 약가 고집

환자들의 의약품 접근권 위해 '강제실시'해야


다국적 제약회사 노바티스가 비싼 약값을 고집하면서 백혈병 치료제 글리벡의 약가 협상을 수개월 째 끌고 있는 가운데, 건강사회를위한약사회·공유지적재산권모임(IPleft) 등 6개단체로 구성된 『글리벡 문제 해결과 의약품의 공공성 확대를 위한 공동대책위』는 8일 토론회를 갖고 강제실시 등 글리벡을 싼 값에 공급하기 위한 대책을 논의했다.

국내에서 글리벡 판매 허가가 난 지난해 6월 이래로 줄곧 한알 당 2만5천원을 고집해 온 노바티스는 11월 19일 정부가 정한 고시가 1만7천862원을 거부했다. 이로 인해 일부에서 글리벡 공급이 중단되는 사태가 발생해 노바티스에 대한 환자들의 비난이 강해지자 노바티스는 지난 12월 2일부터 기존 백혈병 환자들에게만 한시적으로 글리벡을 무상공급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정부와의 약가 재협상 때 유리한 위치를 점하기 위한 임시처방일 뿐, 언제 무상공급이 중단될 지 몰라 환자들을 불안하게 하고 있다.

99년 4월에 만성골수성 백혈병 판정을 받고 현재까지 투병 중인 강주성 씨는 이날 토론회에서 "약값이 너무 비싸, 많은 환자들이 그 보다 더 효능이 떨어지는 약을 억지로 복용할 수밖에 없다"며 어려움을 토로했다. 한알 당 2만5천원인 글리벡을 복용하는데 드는 한달 약값은 보험적용이 된다 하더라도 90만원∼180만원에 이른다. 정부의 고시가 1만7천원도 여전히 비싸긴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글리벡의 원가는 어느 정도일까? 민중의료연합의 정혜주 씨는 글리벡 특허자료 등을 근거로 계산한 결과, 글리벡 한 알의 생산원가는 845원으로 노바티스가 요구한 가격의 30분의 1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정 씨는 "노바티스가 이처럼 막무가내로 높은 이익을 요구할 수 있는 건 제약회사에 독점권을 주는 의약품 특허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WTO 협정 하의 무역관련지적재산권협정은 특허권자에게 개발 비용을 보상해준다는 명목 하에 20년 간의 독점적 권한을 준다. 여기에 의지해 제약회사들은 원가의 수십배에 이르는 가격을 붙여 약을 판매하는 것이다. 이에 대해 정 씨는 "대부분의 신약들은 막대한 공적자금이 투여돼 개발되고, 글리벡도 마찬가지"라며 공적으로 개발된 약품이 사기업의 배를 불리는데 이용되고 있는 현실을 지적했다. 이어 정 씨는 "의약품에 대한 접근권은 기본적인 인권"이라며 사기업의 이윤을 위해 희생되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공유지적재산권모임의 남희섭 변리사는 "특허권이 공중보건의 권리에 우선할 수 없다는 내용의 선언문이 지난 해 11월 도하에서 열린 WTO각료회의에서도 채택됐다"며 "글리벡을 강제실시해 백혈병 환자들이 부담할 수 있는 가격에 공급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편, 노바티스의 홍보대행업체 관계자는 토론회에서 "노바티스는 글리벡 약값이 전액 보험 적용을 받아 환 자들이 전혀 돈을 내지 않고 약을 복용할 수 있기를 바란다"며 노바티스를 옹호하고 나섰다. 이에 대해 우석균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사무국장은 "보험 재정 또한 백혈병 환자를 포함한 국민들이 내는 돈이다. 노바티스가 높은 약가를 고집하면서, 환자들의 본인부담금 0% 운운하는 건 기만"이라고 일축했다.


<해설> 강제실시란?

개발자에게 상당 기간동안 독점권을 주는 특허권의 행사는 때로 공익에 반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따라서 특허법에는 일정한 요건 하에서 특허권자의 의사에 상관없이 특허 발명을 실시할 수 있도록 하는 '강제실시' 제도가 마련돼 있다. 선진국들에선 의약품이 충분히 공급되지 않거나 그 가격이 지나치게 높게 책정되어 있는 경우, 공중보건의 유지를 위해 해당 의약품에 대한 특허권을 제한해 환자들이 의약품에 접근하는데 어려움이 없도록 만든 사례들이 많다. 지난해 8월 브라질에선 보건성이 넬피나비르라는 약에 대해 강제실시권을 발표하자, 특허권을 갖고 있던 제약회사가 스스로 가격을 40% 이상 떨어뜨린 예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