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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진주 총기사건, 경찰 조작했다

‘흉기난동범’으로 몰아 총기사용 정당화


“처음 총성이 났을 때 이모 경사는 냉장고와 난로 사이에 있었고, 우리 남편은 저쪽 끝에 있었어요. 그리고 우리 남편이 이모 경사에게 달려들었고, 곧바로 두 번째 총성이 났어요. 남편이 배를 움켜쥐며 문 밖으로 나와 쓰러졌는데, 배 양쪽에서 피가 나오고 있었어요.”

지난달 27일 밤 경찰이 쏜 총에 맞아 이번달 3일 오전 사망한 권모 씨의 부인은 당시의 상황을 비교적 정확히 기억했다. 경찰이 총을 발사하기까지 정말 순간의 일이었다는 것이 부인 정 씨의 주장. 이는 당시 그 자리에 함께 있었던 권 씨의 후배 심모 씨의 증언에 의해서도 입증된다.

27일 밤 경찰이 사건현장에 도착했을 때, 권 씨는 막 양치를 끝낸 후 집안에서 나오고 있었다. 권 씨는 “당신들이 여기 뭐 하러 왔소”라며 경찰들을 향해 대들려고 하자, 미리 와 있던 심 씨가 “아니, 형님! 왜 이러십니까?”하고 권 씨의 앞을 가로막았다. 이 순간 권 씨는 심 씨를 옆으로 밀쳤고, 그 바람에 심 씨는 권 씨의 뒤편으로 넘어졌다.

심 씨는 권 씨를 뒤로하고 바닥에 쓰러진 뒤 일어서서 뒤돌아보기도 전에 총성이 두발 울렸다고 증언했다. 심 씨가 일어서서 뒤를 돌아봤을 때는 이미 권 씨가 문 밖에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었다는 것. 결국 심 씨는 경찰들이 총을 쏜 순간을 목격할 수는 없었다고 한다.

출동한 경찰이 총을 사용할만한 위급한 상황이 도대체 어떤 경우였을까? 정 씨나 심 씨의 증언을 고려한다면, 그러한 위급한 상황이 발생할만한 충분한 시간적 여유는 없었다. 하지만 경찰은 권 씨와 약 5분간 몸싸움이 있었고, 권 씨가 김모 경장의 총을 뺐으려 하자 이모 경사가 공포탄 1발과 실탄 2발을 발사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에 대해 권씨의 동문인 국제신문 이모 기자는 의혹을 제기했다. 출동한 경찰들이 권 씨와 5분간 몸싸움을 했다면 심 씨가 그 광경을 못 봤을 리 없다는 것. 또 경찰조사 과정에서 심 씨가 경찰로부터 ‘넘어졌다 일어서는 시간이 5분 정도 아니었냐’는 유도신문을 받았다고 이 기자는 전했다.

발사된 총탄에 대해서도 경찰측의 주장은 일관되지 않다. 애초 경찰은 공포탄 1발과 실탄 2발을 발사했다고 했다가, 어느 순간 공포탄 1발과 실탄 1발이라 변경했다가, 최종적으로 다시 공포탄 1발과 실탄 2발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에 대해 인권실천시민연대 오창익 사무국장은 진주경찰서 수사과장에게 “현장에 있던 많은 사람들이 총성을 두 번 들었다고 한다”고 따지자, 수사과장이 “공포탄은 불발이 된 것 같다”며 “현재 권총에 대해 국과수에 검사를 의뢰했다”는 궁색한 변명을 했다고 한다. 결국 경찰 측이 정당방위임을 주장하기 위해 공포탄 발사 내용을 조작하고 있다는 것이 유족 측의 주장이다.

이번 사건은 경찰의 ‘어처구니없는 총기남용’ 사건으로 판단되지만, 경찰은 이를 왜곡하기 위해 사건 직후부터 권 씨를 ‘흉기난동범’으로 몰아갔다. 사건 다음날 아침 진주경찰서는 기자설명회를 열어, △사건이 발생하기 바로 직전 권 씨는 후배인 정모 씨와 술을 마시다 사소한 시비로 맥주병을 깨 후배 정 씨의 목을 찔러 중상을 입혔고 △부인 정 씨로부터는 ‘남편이 자신의 집에서 흉기로 아들을 위협하고 있다’는 신고를 접수했다고 발표했다.

사건을 왜곡하려는 경찰의 의도는 사건 직후 신문보도에 그대로 관철돼, 경남신문과 경남일보의 관련 기사는 권 씨를 ‘흉기난동범’으로 묘사하고 있다.

하지만 부인 정 씨는 평소 잘 알고 지내던 정모 경장에게 도움을 요청하러 인근 상대파출소에 갔을 뿐이라고 반박했다. 권 씨는 동네 방범대장 및 의용소방대원 등을 약10여 년간 역임해 평소 잘 아는 경찰들이 많다는 것. 부인 정 씨는 오히려 당시 상대파출소에 있던 직원이 전화를 받느라 자신의 이야기를 잘 듣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권 씨의 아들도 자신은 할머니와 자고 있었다고 진술했다. 따라서 부인 정 씨의 신고내용은 경찰이 사후에 꾸며낸 이야기일 것이라는 유족 측의 주장은 신빙성이 있었다.

국제신문 이 기자는 깨진 맥주병으로 목을 찌른 일에 대해 “권 씨와 정 씨가 모르는 사이였으면 모르겠으나 평소 잘 아는 사이에서는 술 마시다 있을 수 있는 일”이라며, 경찰이 권 씨를 흉악범으로 몰아가는 것을 강하게 비판했다. 나아가 “사건발생 다음날 상대파출소 직원이 집으로 와서 칼 세 자루를 가지고 갔다”면서, “권 씨가 아들을 위협했다는 사실을 조작하기 위해 증거물로 가져간 것이 분명하다”고 확신했다.

이번 사건에 대해 경상대 정진상 교수는 “기본적으로는 우발적인 사건이라 볼 수 있”지만, “더욱 큰 문제는 경찰에 의해 사후 조직적인 조작이 가해졌다는 사실”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사건의 해결을 위해서는 △철저한 진상조사와 경찰서장의 공개사과 △총기를 발사한 경찰관에 대한 형사처벌 △언론기관의 정정보도 및 국가배상 등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한편, 유족들은 권 씨의 누명이라도 벗어 부인 정 씨와 자식들이 살아가는데 손가락질 안 받을 수 있기를 소박하게 바라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