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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방청기>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의 재판

“30년형이라도”…이례적 선고연기


집총거부 때문에 군사재판에 회부된 여호와증인들의 재판이 열린 15일. 변호인단 5명과 사회단체 활동가 2명, 그리고 여호와증인 관계자들이 2대의 차에 나누어 타고 3군사령부로 향했다.

재판에 회부된 여호와증인들은 총 18명. 좁은 군사재판소 안은 가족들과 워치타워협회(여호와의증인) 관계자들로 가득 찼다. 재판부는 외박 기간 중 음주운전 사고를 낸 군인 한 명에 대한 심문을 마친 뒤, 본격적으로 여호와증인들의 항명죄에 대한 심문에 들어갔다.

파르라니 올려 깎은 머리의 18명의 청년들은 변호사의 질문에 또박또박 자신의 소신을 말하기 시작했다. 자신들은 ‘원수를 사랑하라’, ‘살인하지 말라’ 등 성경의 여러 가르침에 따라 총칼을 들지 않으며 나아가 전쟁을 준비하는 군복무를 하지 않고 있다고 했다. 여호와증인들의 집총 거부의 역사는 나치독일에서도 줄곧 유지되어 왔으며 일제치하에서도 신사참배의 거부, 병역거부는 계속되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이러한 여호와증인들의 양심적 병역거부의 역사뿐만 아니라 수혈을 거부하는 이유,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지 않는 이유 등 사회에서 이들의 양심에 귀기울이지 못하도록 편견을 조장했던 몇 가지 이유에 대한 심문도 진행했다.

최후 변론에서 그들은 시종일관 조용하면서도 맑은 목소리로 성경 구절을 인용하며 자신들이 왜 집총을 거부하는지를 힘주어 말했다. 사랑으로 하나되는 평화로운 세상을 만드는 것이 하느님의 말씀이요 하느님의 증인들로써 자신들이 목숨을 걸고 지켜야 하는 양심이라고. 군대가 필요 없는, 무기가 필요 없는 세상은 지금은 꿈속에서 그릴 수 있는 이상이지만 인간이기에 그 이상은 타협할 수 없는 그 무엇이라고. 자신들의 신념이 현행법에 저촉된다면 3년 아니 30년이라도 기꺼이 형을 살겠지만 조금만 더 사회가 자신들의 양심을 인정하고 이해해 준다면 군대 가는 다른 친구들과는 다른 방법으로 국방의 의무를 이행하고 싶다고….

4시간의 긴 심문을 마치고 재판부는 선고연기를 결정했다. 이것은 항명죄에 관한 군사재판이 보통 당일 심문에 이어 곧바로 선고(징역 3년)를 내렸던 전례에 비추어 봤을 때 매우 이례적인 결과였다. 재판부는 변호인들에게 가능한 자세하게 변론요지서를 제출해 줄 것을 요구했고 형량을 줄이는 문제에 대해 검토하겠다는 답변을 방청했던 모든 사람들에게 약속했다. 이번 재판으로 재판부 스스로도 여호와증인들에 대한 이해가 넓어졌음을 고백했다. 재판 과정 내내 방청객들은 눈물을 흘렸다. 수십 년간 손가락질 받으며 지켜왔던 그들의 양심은 적어도 이 날의 군사재판에서만큼은 무죄였다.

- 최정민(평화인권연대 활동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