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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사회권 현실과 국가의 의무 ④

건강보험 파산, “국가가 책임질 일”


3월 16일 보건복지부는, 의료보험 발족 13년 만에 처음으로 지역건강보험 재정이 완전히 바닥나고, 올해 건강보험 재정 적자 규모가 4조원에 이를 것 같다고 발표했다.

“국민들이 병원을 많이 찾아서 건강보험이 거덜났다”는 해괴한 언론보도가 있긴 했지만 사실 우리나라 환자들이 직접 부담하는 진료비 수준은 매우 높다. 정부예산 가운데 0.3%만이 보건의료 예산인 상황인 데다가 국민들이 ‘비싼 돈’들여 내는 건강보험 혜택이란 것이 겨우 ‘의료비 할인’ 수준이기 때문이다. ‘경제적 부담’은 여전히 국민들이 의료서비스를 충분하게 받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이며, 서민들에게 병원 문턱이 언제나 높은 이유이다.

사회권조약 12조는 “조약 가입당사국이 누구나 병에 걸렸을 경우 의료와 의학적 배려를 받을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놓을 것”을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 보건의료 현실에 이 조약은 거의 폐기처분될 처지에 놓여있다.


재정파탄, 건강권 유보 이유 안 돼

복지부 발표 후 민주노총은 기자회견을 열어 “의료보험 재정 파탄 원인은 지난 해 의료 폐업을 무마하기 위해 부당하게 의보 수가를 인상하고 국고 보조 약속마저 깨버린 정부에 있다”며 분노를 터뜨렸다. 정부는 이런 노동계의 반발에도 아랑곳없이 “건강보험 예산 충당을 위해 보험료 인상은 불가피하다”는 간 큰 소리를 해댔다. 정부는 또 ‘소액진료비 본인부담제’나 ‘강제의료저축제도’ 같은 제도도 고려하는 중이라고 말했다. 가난한 국민들의 주머니를 또 털겠다는 거다. 그러나 현 건강보험 파탄 사태는 그런 미봉책으로 해결될 것이 아니라는데 많은 사람들이 입을 모으고 있다.

보건복지민중연대(준)는 “의료 서비스를 의사․약사와 환자 사이에 발생하는 거래행위로 바라볼 때 건강보험 재정위기를 의보 수가 인상과 비효율적 지출로 인한 사건으로 바라볼 수도 있겠”지만 “비정규직 양산․대량 실업으로 인한 실질임금 저하와 공공의료기관 부족의 측면을 본다면 현 건강보험의 문제는 우리나라가 처한 보건의료의 구조적 문제를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며 보다 근본적인 문제를 지적하기도 한다.

정부는 5월 말 건강보험 대책을 내오겠다고 말했다. 그 대책에 무엇이 담겨있을지 모르지만 지금보다 국민이 부담해야 할 부담이 조금이라도 늘였다면, 그것은 정부가 부담해야 할 부분을 국민에게 전가한 것일 뿐이다.


학교법인 횡포도 방치

국가가 교육 또한 책임지고 있지 못하다는 것은 ‘간디학교’와 ‘상문고’를 통해서 쉽게 알 수 있다. 지난 해 8월 경상남도 교육청은 우리나라의 대표적 ‘대안학교’인 간디학교에 대해 특별감사를 실시하고, “재정 부족으로 인한 시설 미비와 인가 받지 않은 곳에서의 교육 행위”를 이유로 학교에 설치된 중학교 과정 해산을 명령했다. 한 술 더 떠 경상남도 교육청은 간디학교가 중학교 과정을 없애지 않을 경우, “고등학교에 대한 재정 지원을 중단하고 교장과 이사장을 사법당국에 고발하겠다”는 으름장까지 놓았다. 간디학교 입장에서 재정지원 중단이란 “학교 문 닫아라”는 얘기와 다름없었다. 정부가 대안교육의 실험을 도와주지는 못할 망정 뿌리를 뽑으려 한 것이다.

이처럼 정부가 입시위주의 획일적 교육제도에 대한 대책을 마련하지도 않으면서 대안교육 시행을 막는 것은 국가가 담당해야 할 교육에 대한 책임을 외면한다는 비난을 면하기 힘들다.

상문고등학교 문제도 비슷한 문제점을 안고 있다. 사립 학교 재단의 치부를 그대로 보여주는 상문고 문제는 한 두 해된 일도 아니고 지난 94년 이래로 쭉 진행돼온 ‘재단 비리’의 대표적 사건이다. 상문고 문제는 핵심은 바로 ‘학교를 이익 창출의 수단으로 보는 사립 학교 재단과 이를 관리하지 않고 오히려 방조하는 정부’에 있다.

전교조는 우리나라 경제규모에 맞는 교육여건을 만들기 위해서는 적어도 전체 국가 예산 중 6%는 교육에 투자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현재 우리나라 교육투자 예산은 4.4%이다. 정부는 끊임없이 ‘공교육 강화’를 외치고 있지만, ‘대학 입시’만을 위해 한 반에 40명씩 바글거리는 교실 속에서, 학생들을 ‘돈벌이’ 수단으로만 바라보는 사립학교 재단의 횡포 속에서 정작 교육의 한 주체로 서야할 학생들은 질식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