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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납치' 의혹 노동자 돌아와

삼성SDI, 악랄한 무조노정책


지난 10월 9일 '납치감금됐다'는 소문과 함께 사라졌던 삼성SDI 천안공장 노동자 김갑수(37) 씨가 11월 3일 회사로 되돌아왔다. 김갑수 씨는 삼성SDI 천안공장에서 노조설립을 추진해온 핵심 멤버 가운데 한 사람이었고, 따라서 이번 사건이 노조설립 시도를 좌절시키려는 회사측의 계획적인 음모였을 것이라는 의혹이 무성했다.

회사 복귀 후, 여러 차례 기자와의 만남을 피해왔던 김갑수 씨는 20일 기자를 만난 자리에서 지난 한달여의 경과와 자신의 심경을 드러내주었다.

<인터뷰> 삼성SDI 노동자 김갑수 씨
삼성, 노조 싹만 보이면 짓밟아


◎ 10월 9일 이후 벌어진 일들을 설명해달라.

= 10월 9일 나를 담당하는 주임으로부터 만나자는 연락이 왔다. 가보니 임 부장 등 네 사람이 기다리고 있었다. '술 한잔 먹자'고 하길래 시내에서 먹자고 했는데, 굳이 밖으로 나가자고 했다. 그 사람들이 "노조 때문에 시끄러우니 멀리 격리시키라는 회사의 지시가 있었다"고 말했다.

김갑수 씨는 이날 밤부터 강릉→정동진→낙산→춘천→수원→아산→부산→남해→광양→내장산→서울 등지로 옮겨다니며, 끊임없는 회유를 받았다고 밝혔다. 그에게 '따라붙은' 회사 간부 가운데엔 수원공장에서 내려온 간부도 포함되어 있었다.


◎ 관리자들이 무엇을 요구했나?

= 해외사업장이나 삼성의 다른 계열사로 옮길 것을 요구했지만 거절했다.


◎ 중간에 벗어날 생각은 안 했나?

= 처음엔 천안으로 돌아가겠다고 말하면서 버텼지만, 회사측에서 이미 작정하고 시작한 일이라 회사로 돌아간들 소용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도중에 민주노총이 회사측을 '감금'혐의로 고발한 것과 관련해, 천안 변두리의 한 파출소에서 '납치감금이 아니다'는 내용의 진술을 해주었다. 중간관리자들이 피해입는 것을 원치 않아서다.


◎ 회사로 다시 복귀하게 된 이유는?

= 민주노총과 부산공장 해고자들이 천안공장 앞에서 계속 집회를 하니까 회사측에서 부담을 느꼈던 것 같다.

김갑수 씨는 집요한 회유를 버텨냈고 회사로 복귀했지만, 회사측은 11월 16일 징계위원회를 통해 김 씨의 해고를 결정했다. 해고사유는 △상사에 대한 폭언과 폭행 △업무방해 △근무지 이탈 및 근무태만 등이다. 김 씨는 해고가 '결정'된 후에도 '해외사업장'으로 나가달라는 회유가 있었다고 밝혔다.


◎ 해고를 수용하는가?

= 더 이상 중간관리자들에게 폐를 끼치고 싶지 않아 물러서기로 했다.

김갑수 씨는 천안공장 내 한마음협의회(이른바 노사협의회) 위원이었고, 다른 4명의 노동자들과 함께 노조결성을 준비하던 중이었다. 김 씨는 앞서 수원공장에 근무할 때 수원공장의 '노조설립시도 사건'에도 관계되어 있었다. 99년 11월 노조설립신고서 제출을 앞두고 회사측에 '발각'돼 좌절된 그 사건으로, 동지들은 모두 퇴사하거나 해외사업장으로 전출을 갔다. 김갑수 씨에 대해서는 "그룹과 회사가 추구하는 비노조에 순응하며 협의회 업무에만 충실하고 노조관련 행동을 하지 않겠다"는 서약서를 쓰는 것으로 마무리했다.


◎ 해외사업장은 여러 면에서 조건이 좋은데 '해고'를 선택한 이유는

= 삼성은 돈으로 노무관리를 한다. 현찰 앞에서 눈멀지 않는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하지만 삼성에서도 돈에 무너지지 않는 사람이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계란으로 바위치기지만 흔적이라고 남기고 싶었다.

87년 입사 후 14년만에 '징계해고'라는 불명예를 안은 채 사원증을 반납하던 날, 김갑수 씨는 혼자 마곡사를 찾아가 눈물을 토해냈다고 한다. 그는 심경을 더 정리하겠다는 말을 남기고 자리를 떴다. 한번 펴보지도 못한 채 짓밟힌 싹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