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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3·8 세계 여성의 날 기획 ②>

여성의 몸에 대한 일상화된 테러


유엔은 "공적 혹은 사적 삶의 영역에서 여성에게 가해지는 육체적, 성적(sexual) 혹은 정신적 고통을 초래하거나 초래할 수 있는 성에 기반한(gender-based) 모든 형태의 폭력"을 '여성에 대한 폭력'으로 규정한다. 여성에게 가해지는 폭력은 육체적 고통뿐 아니라 여성의 존엄성을 총체적으로 파괴한다는 점에서 여성 인권을 위협하는 최대 걸림돌로 지목되고 있다.

여성들은 일생을 통해 단 한 번도 '안전한 밤길'을 걸어보지 못한다. 거리뿐 아니라 가정, 학교, 직장, 사이버 공간 등 일상의 곳곳에서 성희롱, 강간, 구타 등의 폭력에 직면한다. 대개 이러한 폭력은 가장, 교수, 고용주, 어른 등 남성들이 자신의 우월적인 지위와 권력을 이용하여 가하는 것이므로, 종속적 관계에 놓인 여성들은 이에 저항하기 힘들다.

우리의 경우, 최근 10년간 성폭력특별법에서부터 가정폭력방지법, 남녀고용평등법, 지난해 제정된 남녀차별금지법에 이르기까지 여성을 폭력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법적 장치가 비약적으로 발전해 왔다. 하지만 법과 현실의 간극은 여전히 크다.


여성의 일상은 전쟁터

매매춘(賣買春) 역시 여성에 대한 폭력의 또다른 얼굴이다. 매매춘의 과정은 돈의 힘으로 일시적으로나마 남성이 여성의 몸에 대한 독점적인 사용권을 소유하는 과정이므로, 매춘여성은 흔히 매춘남성의 폭력의 대상이 된다. 또 매춘여성들의 상당수가 과거 강간과 학대의 경험을 갖고 있다는 사실, 동기가 무엇이든 일단 매매춘구조 속에 빠져들고 나면 매춘여성이 업주나 중간착취자 등에 의한 폭력과 착취의 대상으로 노예화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은 여성에 대한 폭력이 또다른 폭력으로 이어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특히 정부의 지원과 육성정책 하에 형성된 기지촌의 존재, 외화획득이라는 미명하에 관광산업을 육성하면서 매춘코스를 집어넣는 관행을 묵인해온 정부의 태도는 국가권력이 여성에 대한 폭력을 방조하거나 오히려 지원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무력갈등 하에 증폭되는 폭력

특히 무력갈등 하에서 일어나는 여성에 대한 폭력은 더욱 파괴적이다. 종군위안부의 존재에서 알 수 있듯, 무력갈등 하에서 여성들은 조직적 강간, 성노예(sexual slave), 성고문, 강제불임, 강제임신 등 성적 폭력의 희생양이 된다. 동티모르, 르완다, 구 유고, 버마, 코소보 등 대다수 무력갈등 상황 하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된 이러한 현상은 여성에 대한 폭력을 하나의 전술로서 활용하고 있음을 말해준다.

게이 맥두걸 유엔인권소위원회 특별보고관은 그 이유로 △적들을 극도의 공포에 떨도록 만들고 △여성이 속한 집단의 명예를 공격함으로써 사기를 저하시킬 수 있으며 △강제임신 등을 통해 인종청소의 효과까지도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또한 여성의 몸을 하나의 전리품으로 간주하는 남성중심적 전쟁 질서도 한 몫 한다.

제주 4·3항쟁과 광주민주화항쟁 당시 여성들이 성고문과 강간 등 폭력의 희생자가 되었던 사례는 타민족이 아닌 국가권력에 의해 가해진 대표적 테러행위.

그러나 지금까지 이러한 폭력행위가 처벌된 사례는 하나도 없다. 여성에 대한 폭력을 반인도적 범죄행위이자 인권침해로 간주하지 않고, 여성과 그 공동체의 수치로만 여기는 사회적 태도가 여성에 대한 폭력에 침묵하도록 만들기 때문. 무력갈등이 종식된 이후에도 피해 여성들이 일생을 통해 고통을 겪어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결국 역사적으로 고착되어 온 성의 불평등, 여성을 지배와 정복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관행을 극복하고 평화를 실현하려는 노력없이 폭력으로부터 해방된 여성의 삶은 불가능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