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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수배·실직자 딱한 처지

명동성당, 농성자 철수 요구

명동성당에 찬바람이 불고 있다.

최근 들어 해고․수배․실직 등으로 갈 곳을 잃은 노동자들이 투쟁의 구심이자 안식처로 삼아왔던 명동성당에서 밀려날 상황에 처한 것이다.

명동성당의 장덕필 주임신부와 평신도회측은 22일 성당 내에서 천막농성중인 노동자들에게 “25일 낮 12시까지 천막을 모두 철거하지 않으면 이후의 사태에 대해 아무런 책임도 질 수 없다”고 통보했다. 그러나 농성자 가운데 수배자가 다수 포함되어 있고, 명동성당 외에 투쟁의 거점을 마련하기 힘든 사정 때문에 노동자들이 성당의 요구를 즉각 수용하기는 어려운 형편이다. 현재 농성자들은 “철수 시기를 늦춰달라”며 선처를 호소하고 있다.

장덕필 주임신부는 “날씨가 추워지고 있기 때문에 더 이상 농성을 허용할 수 없다”며 이번 통보가 인도적 차원의 결정임을 강조했다. 그러나 장 신부는 “농성이 너무 오래 지속되고 있고 주장도 할만큼 하지 않았냐”며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않았다. 수배자 문제에 대해 장 신부는 “(밖으로) 나가서 사법처리를 받으면 될 것”이라는 말로 일축했다.

현재 명동성당에서 천막농성중인 노동자는 만도기계와 조흥시스템, 금성기공 노조원과 ‘새날을여는실업자연맹’ 회원, 건설일용노조 조합원, 동화은행을 비롯한 은행노동자 등이다.

특히 만도기계와 금성기공 노조원들 가운데엔 19명의 수배자가 포함되어 있다. 만도기계 수배노동자는 “경찰력 투입으로 초토화된 노동조합활동이 복구되면 당국에 자진출두할 계획”이라며 “그때까지만 농성을 허락해 주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8월 1일 조흥은행에서 퇴출돼 직장을 잃은 조흥시스템 노동자들도 “사무실마저 폐쇄되어 더 이상 갈 곳이 없었다”며 성당에서 나가게 되면 뾰족한 대책이 없다고 밝혔다. 서울지역 건설일용노조위원장 이공석 씨는 “농성자들에게 우호적인 신도들도 많지만, 우리를 ‘빨갱이’로 바라보는 일부 신도들의 목소리가 큰 것 같다”며 “종교인인 만큼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들을 잘 보듬어 주었으면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