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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인권시평> 영화 <하이눈>과 매카시즘


지난 달 KBS 명화극장은 헐리우드 서부극의 고전으로 우리에게 알려진 <하이눈>을 방영했다. 1952년에 개봉된 미국 영화 <하이눈>은 그해 아카데미 상 4개 부문을 수상한 작품이었다. 그레고리 펙이 분한 정의의 보안관이 4명의 악당무리와 결투를 벌여 승리한다는 내용이다. 그러나 <하이눈>은 존 웨인이나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서부 영화처럼 폭력이 난무하다 권선징악으로 끝나는 상투적 서부영화가 아니다. <하이눈>은 서부극의 형식을 빌어 매카시즘에 포로가 된 1950년대 미국사회를 고발한 "인권영화"이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미소의 냉전체제가 굳어지자 미국은 국내외적으로 반공이데올로기를 통한 좌익 숙정작업을 벌였다. 한반도에서 분단체제가 굳어질 무렵 미국내에도 반공열풍이 달아오르기 시작했고 가장 먼저 반공회오리가 불어닥친 곳은 할리우드였다. 할리우드는 반공이데올로기를 앞세운 우익정치인들에게는 아주 매력적인 목표였다. 1930년대 이후 헐리우드에서는 자본주의에 병든 미국사회를 비판하는 많은 영화가 제작되었다. 미국인들의 관심이 집중된 할리우드는 우익세력들이 가장 효과적으로 자신들의 반공의지를 미국인들에게 과시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1948년 할리우드에서 연방의회 청문회가 열렸고 20여명의 배우, 작가, 감독 등이 소환되었다. 이중 10명의 영화인들은 공산당원을 색출한다는 핑계로 표현의 자유, 창작의 자유, 예술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을 반대하며 청문회에 협조하지 않았다. 그들은 공산주의자를 색출하는 것 보다 표현의 자유를 지키는 것이 국가안보에 더 중요하다고 호소했다. 많은 미국인들이 심정적으로 그들에게 동조했지만 공개적으로 그들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았다. 결국 그들은 할리우드로부터 추방을 당했다. 첫번째 대결장이었던 할리우드에서 기세를 올린 매카시즘은 종교계, 법조계, 학계, 교육계 등 미국사회 전체를 휩쓸게 되었다. 결국 1950년대 초 미국사회는 공포와 불신으로 가득한 동토의 왕국이 되고 말았다.

한편 한국전이 교착상태에 빠지고, 공산주의 위협이 심각한 것이 아니라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매카시즘의 병폐를 감지하는 미국인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그러나 아직은 매카시즘을 공개적으로 비판하는 것 조차 "빨갱이"로 의심받는 분위기였다. 1951년에 제작된 <하이눈>은 서부영화의 형식을 빌어 매카시즘에 대응하는 미국인들의 태도를 통렬히 고발했다. <하이눈>의 기둥줄거리는 전형적인 서부극에서 처럼 보안관과 악당과의 대결이 아니라 보안관과 마을주민들간의 갈등이다. 보안관을 돕기보다는 그를 몰아내고 악당과 타협하려는 영화속의 마을사람들은 매카시즘 공포에 사로잡힌 미국인들의 자화상이었다.

<하이눈>은 보안관 케인이 결혼식을 올리고 신부와 함께 사랑의 보금자리를 마련하려 마을을 떠나려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러나 그가 과거 체포했던 악당 프랭크 밀러가 사면되어 다시 마을로 돌아오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진다. 마을 사람들은 그가 복수를 하기 위해 돌아오는 것이라며 보안관에게 마을을 떠날 것을 재촉한다. 그러나 보안관은 마을에 남아 악당들과 대결하기로 결정한다. 보안관 케인은 매카시즘으로 부터 인권을 지키려는 양심적 인권운동세력을 상징한다.

보안관은 마을사람들이 단결한다면 굳이 총격전을 벌이지 않고서 악당들을 물리칠 수 있다고 믿고 마을 사람들을 조직하려한다. 그러나 그와 함께 싸우겠다는 사람들은 없다. 보안관은 교회를 찾아가지만 목사와 신도 모두 의견만 무성할 뿐 구체적 행동으로 옮기지는 못한다. 마을의 치안판사마저 밀러일당은 "잔인하고 광폭해서 상식이 통하지 않는다"며 짐을 챙겨 마을을 떠난다. 법치주의와 기본권보호를 외쳐댔던 미국의 법조계마저 매카시즘 선풍이 불어닥치자 인권과 정의를 외면했음을 풍자한 것이다. 한편 공산주의자를 상징하는 마을의 창녀는 무사히 마을을 빠져나간다.

결국 보안관은 혼자 악당과 대결하여 승리하게 된다. 그러나 그것은 보안관의 총솜씨 때문이 아니라 악당들의 무모한 행동, 그리고 마지막 순간 남편을 도운 아내의 덕택이었다. <하이눈>은 보안관의 승리로 끝나지만 해피엔딩은 아니다. 결투가 끝나고 케인은 보안관 뱃지를 땅에 버리고 아내와 함께 씁쓸한 분노를 삭이며 마을을 떠난다. 미국인들이 자랑스럽게 여기는 법이나 양심 모두 매카시즘 선풍 앞에선 무력하게 휩쓸려 버린 것에 대한 분노와 혐오의 표현이다.

영화 <하이눈>에서 보안관과 악당들에 대해 마을 사람들이 보여준 반응은 매카시즘에 휩쓸린 미국인들의 반응, 바로 그것이다. 누구도 악당에 대해 정면 대결을 통해 싸우려고 들지 않는다. 법의 집행자인 치안판사도, 도덕적 지주인 교회 목사도 두려워하고 피하려고 만 할 뿐이다. 영화 <하이눈>은 악의 근원은 악당들에서 비롯된다기 보다는 악과 대결을 거부하는 비굴한 마을 주민들에 있음을 보여준다. 매카시즘의 병폐는 매카시즘을 선동한 극우정치인들 보다는 매카시즘에 정면으로 대응하지 못한 미국인들에게 책임이 있음을 보여준다. 영화 <하이눈>에 등장한 마을은 1950년대 미국사회인 동시에 1990년대 한국 사회의 모습이기도 하다.

장호순(순천향대 신문방송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