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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인권시평> 전·노 사면주장, 지금 같은 방식으론 안된다

지난 4월 17일자 대법원 판결이 내려지기 무섭게 신한국당의 대선예비주자들이 앞장서서 제기해온 전, 노씨등에 대한 사면요구가 바야흐로 청와대에 의해 본격적으로 검토되고 있다고 한다.

최근의 언론보도에 따르면 오는 7월 21일에 선출될 신한국당 대선후보가 이들에 대한 조기사면을 건의할 경우 김 대통령이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것이라는 것이다. 다만 구체적인 사면일자는 8.15광복절, 대선 직전, 대선 직후 등으로 아직 확정되지 않은 상태라고 한다. 이중 광복절 사면 여부가 관심의 초점이다.


임기만료 전에 해야할 민주개혁작업

사면주창자들은 여권 대선예비주자가 아니면 5, 6공의 실세 인사들이다. 이들은 한결같이 김대통령과 대구·경북을 향해 사면주장을 하는 것이 특징이다. 대통령에게는 결자해지 차원에서 임기 만료 전에 사면하라고 목청을 높인다. 전․노 씨등에 대한 사법처리는 처음부터 잘못된 것이니 바로잡고 물러나라는 투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 사태를 꼬이게 한 것은 현 정권이 전․노등의 기소를 허용한 데 있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현 정권의 잘못은 전․노 씨의 사법처리 정신에 걸맞는 야합 사죄, 양심수 석방, 공안기구 개혁등 과거청산작업이나 지역통합과 사회통합을 진전시킬 과감한 민주개혁작업을 수반하지 않은 데 있다. 따라서 올바른 결자해지의 자세는 지금에라도 과거청산과 민주개혁에 나서는 데 있지 간신히 이뤄진 형사처벌마저 되돌리는 데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국민화해 내세운 표 작업

사면주창자들은 국민화합을 명분으로 내세운다. 그러나 여당의 대선예비주자들이 대구·경북 들으라고 국민화해 운운하는 것은 지역정서에 불을 질러 대구·경북의 표심을 얻기 위한 것일 뿐 국민화해를 위한 것이 아니다. 사면에 반대하는 광주·전남시민들을 국민화해의 정신을 결여한 소아적 존재로 몰아부치면서 국민화해를 도모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사면주창자중 이런 뉘앙스를 풍기지 않으면서 사면을 주장할 수 있는 자격을 가진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과거 5, 6공 실세의 경우 전·노에 대한 사면요구는 자기 사면의 요구에 지나지 않고 여권 예비주자의 경우 지역정서에 기반한 득표전략의 하나로 주장하기 때문이다.

이 시점에서 사면을 검토해야 한다면 그 이유는 전·노 씨에 대한 사법처리가 잘못되어서도, 전·노 씨가 사면받을 만한 공적이 있어서도 아니다. 또한 전·노 씨가 잘못을 뉘우쳐서도 아니다. 전·노는 회개하지 않을 것이고 설령 회개의 시늉을 낸들 진심을 확인할 길이 없다. 그렇기에 사면 여부는 전·노 씨의 전향성명서 한 장에 달려있는 문제가 아니다. 전·노 씨등에 대한 사면이 바람직한 경우는 사면이 망국적 지역갈등의 해소와 민주적 국민통합의 진전에 다소나마 기여할 것이 분명할 때에 국한된다.


대통령의 사면에 앞서

그렇기에 여당 대선후보나 5, 6공 영합자들의 건의를 받아 사면하는 방식을 취해서는 안된다. 과거청산과 민주발전, 그리고 국민통합을 위해 사면이 긍정적으로 작용하려면 여당의 대선후보들을 위시한 사면주창자들은 광주․전남시민들에게 달려가야 한다. 17년전 그들이 고난을 받을 때 침묵하고 외면했던 점에 대해 사죄하고 지난 17년간 그들이 겪어온 고통에 대해 진심으로 위로해야 한다. 그리고 광주·전남의 시민들이 고립무원의 상태에서 진실규명과 정의회복을 위해 치열하게 싸워 결국 역사왜곡을 바로잡은 데 대해 치하해야 한다. 그런 연후에 이들에게 그 연장선 상에서 다시 한 번 희생과 대동의 위대한 5월 정신을 발휘하여 사면에 반대하지 말 것을 호소해야 한다. 광주·전남시민들은 지역갈등 해소와 국민통합 진전이라는 대의에 입각하여 이러한 호소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을 것이다. 이러한 뜻이 확인될 경우 대통령은 지체없이 광주 망월동 신묘역을 방문하여 온 광주시민과 함께 지역갈등 해소 및 국민대화합 선언을 하고 구체적 실천 프로그램을 밝혀야 한다. 이렇게 해야 사면이 국민화해의 계기로 작용할 수 있다.

5.18이 역사와 법에서 공식복권되고 국가기념일로 지정된 이제 광주시민들이 과거청산과 민주발전을 가로막는 비합리적 지역감정을 앞장서서 해소시키기 위한 절절한 염원과 넉넉한 마음으로 전·노 씨등을 사면한다면 지역갈등 극복과 국민통합 진전의 한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거듭 강조하거니와 대통령의 사면권은 광주시민들의 이러한 뜻을 받아 확인적으로 행사될 때에만 국민통합의 계기가 될 수 있다. 그렇지 않고 여당 후보의 건의를 받는 형식으로 대통령이 사면을 한다면 이는 대선을 앞두고 정권재창출을 위해 망국적 지역갈등을 조장하는 것일 뿐이다. 전·노의 사법처리 자체가 잘못된 것이라는 뉘앙스를 풍기는 사면주장이나 대구·경북의 표심을 겨냥하여 외쳐지는 사면주장은 결단코 용납될 수 없다.

곽노현 (방송대 법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