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하루소식

'망명' 대서특필, 북 주민 생존권 외면

세계식량기구 "북한 기근, 이디오피아보다 참혹"


「인민이 굶어죽는데 무슨 사회주의인가」

황장엽 비서의 망명 소식을 전하면서 '인민의 굶주림'에 격분하는 듯한 조선일보 13일자 머릿기사의 제목이다. 조선일보가 13, 14일 이틀간 내보낸 북한 관련 기사는 총 16면 35꼭지. 그러나 '도배질'에 가까운 북한 관련기사의 홍수 속에서 '굶주린 인민'에 대한 존중이나 동포애적 연민은 어디서도 찾아볼 수가 없다. '굶주린 인민'은 '생존해야 할 인격체이자 동포'가 아니라 '이념 선전을 위한 도구'로 이용된 듯한 인상이다.

12일 세계식량계획(WFP)의 발표에 따르면, 북한의 식량부족과 기아문제는 85년 이디오피아의 대기근보다 심각한 상황이다. 북한은 95·96년에 걸친 홍수로 인해 농토의 1/5이 파괴되었고, 2백만 톤에 달하는 곡물 손실을 입었다.

북한 주민들에 대한 식량배급은 갈수록 줄어들어 홍수 전까지 하루 7백 그램에 달하던 배급량이 최근 1백내지 1백50그램 수준에 그치고 있다. 외국의 원조가 없다면 올해 4, 5월경엔 식량이 완전히 바닥날 상황이라는 것이 세계식량계획의 설명이다.

주민들은 배고픔을 견디기 위해 들판과 공원의 풀뿌리나 잎사귀 등을 찾아 헤매고 있으며, 추수 때가 되기도 전에 곡물의 1/2을 먹어치웠다고 한다. 식량을 대체할 돈·가축·식물 등도 점차 고갈되고 있어 2년 후엔 이러한 생존의 최후수단마저 사라질 우려에 처해 있다.

북한에 파견된 세계식량계획 사무원들에 따르면, 주민들은 갈수록 여위어가고 있으며, 피부는 누렇게 떴고 광대뼈가 튀어나왔다고 한다. 세계식량계획 부집행장 나망가(Namanga) 씨는 "북한의 식량위기는 점점 악화되고 있다"며 국제사회의 신속한 도움을 요청했다. 세계식량계획은 지금까지 6만톤의 식량을 북한에 원조해 왔는데, 당장 식량 10만톤의 긴급원조가 필요하다며 4천1백60만 달러의 원조를 호소했다.

북한의 실상이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언론은 그 많은 지면 속에서도 '굶주림의 실상'과 인도주의적 원조의 필요성에 대해선 철저히 외면하고 있다.

조선일보 14일자 <기자수첩>을 통해 최구식 기자는 황 비서 망명에 대한 야당의 의혹제기를 '무책임한 논평'이라고 비난했다. 그는 "대사관에 몸을 맡긴 채 떨고 있을 '노인'에 대해 한 마디 위로나 걱정도 없이 정략적으로 이용하려 하는 것은 인정에 맞지 않는다"는 주장을 폈다. 최 기자의 지적이 균형 있게 들리기 위해선 오히려 '동포의 굶주림'을 이념선전의 도구로 이용하는 언론에 대해 충고와 비난을 아끼지 말았어야 했다는 느낌을 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