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하루소식

세계의 인권⑥ 세계의 난민

"대중적 민주정치만이 난민발생 원인을 근본적으로 차단하는 길이다"


사람이면 누구나 '지붕'을 가질 권리가 있다. 다리 뻗고 누울 수 있고, 구수한 음식 냄새를 피우고, 은밀한 사랑을 속삭이고, 혼자만의 생각을 즐길 수 있는 '지붕'을 말이다.

그러나, 적어도 2천만의 인구가 지붕을 갖지 못한 채 떠돌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유엔난민고등판무관에 따르면, (94년 8월 현재) 르완다, 팔레스티안, 리베리아는 전체 인구의 28% 이상을, 구유고, 아프가니스탄, 에리트리아는 전 인구의 10% 이상을 난민으로 배출하였다. 특히, 전체난민 인구의 1/3에 해당하는 약 7백만명이 아프리카에 있으며, 르완다에만 2백만의 난민이 있다. 아프리카의 난민인구는 지난 25년동안 10배로 늘어났고, 국경을 넘지는 않았지만 자국 내에서 집과 고향을 등질 수 밖에 없었던 이들도 1천6백만 이상에 이른다.

51년 유엔난민지위조약에 따르면 난민이란 "인종.종교.국적.특정 사회집단의 구성원임 또는 정치적 의견을 이유로 박해를 받을 우려가 있다는 충분한 이유가 있는 공포로 인하여 국적국 밖에 있으며, 그 국적국의 보호를 받을 수 없거나 또는 그러한 공포로 인하여 그 국적국의 보호를 받는 것을 원하지 아니하는 사람"을 말한다.

이러한 정의는 개별사안에 중점을 두었던 세계대전 전후상황을 반영한 것으로, 개별적인 박해보다는 전쟁과 폭정.기아에 근거한 집단적인 탈출로 나타난 지난 20년간의 난민이동과는 거리가 있다. 또한, 이 정의는 난민과 마찬가지의 이유로 신변에 위협을 느끼고 도망했거나 거주지에서 쫓겨났다 할지라도 국경을 넘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적용되지 않는다. 문제 원인의 본거지에 머물고 있기 때문에 오히려 더 위험한 조건에 처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들을 보호하기 위한 국제법상의 근거나 조직이 없다는 것이 큰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난민의 권리를 명시한 대표적인 국제인권기준에는 세계인권선언과 51년 유엔난민조약, 69년 아프리카난민조약이 있다. 세계인권선언은 일반시민이나 난민의 구분 없이 '모든 사람'에게 시민.정치.경제.사회적 권리를 충분히 누릴 권리가 있다고 확언하고 있고, 유엔난민조약과 아프리카난민조약은 난민의 이동의 자유, 재산획득권, 사법.교육.고용이나 여타 중요한 권리들에 대하여 여느 시민과 마찬가지로 합당한 처우를 받을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그러나 난민에 대한 국제사회의 현실적인 영접은 차갑기 그지없다. 공해에서의 입국저지, 비자 제한, 죄과 없는 체포.구금, 강제귀환, 입국거부에 따른 항의절차의 변칙적 운영 등이 불법이민과 망명절차의 남용을 막겠다는 구실로 이루어진다.

또한, '난민'의 정의를 유엔난민조약보다 축소 해석하려는 의도가 두드러져 '일시적 보호'니 '상황이 호전중인 국가'니 '안전지대'니 하는 개념들이 개발되었다.

폭발적인 난민유입에 대한 반응이 '일종의 공포와 신경질적 원천봉쇄'로 표현될 수 있다면, 난민에 대한 원조는 '기부자의 열정의 쇠퇴'로 표현된다. 유엔난민고등판무관의 예산은 난민증가비율을 따라잡지 못하고 있고, 결과는 식량조달 감소와 기타 프로그램의 축소로 나타나고 있다.

난민들의 가장 큰 고충은 참혹한 굶주림이다. 국제원조단체들은 하루 최소 열량 2,000Kcal를 채우기 위한 전쟁을 벌이고 있다. 당연히 질보다 양이 우선이고, 필수적인 비타민의 섭취나 난민들의 식사습관에 대한 고려는 먼 산에 불과하다.

비타민 C의 부족이 괴혈병을 낳는다는 상식은 여기선 의미가 없다. 열병은 아주 손쉽게 굶주린 어린이들을 쓰러뜨린다. 홍역·설사·말라리아·호흡기 질환 등 기초적인 영양섭취와 치료약만으로 극복 가능한 질병으로 하루평균 1만명당 5-10명이 죽어간다. 또한 원조단체간에 손발이 맞지 않는 것도 큰 문제로 지적된다. 단체간의 경쟁과 견해차이로 인한 겹치기나 소모적인 지원 행태가 나타난다. 모든 원조가 전적으로 해외기구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에 현지의 의견이 수렴되기 어려운 점도 한 몫을 한다.

또한, 난민들은 상시적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난민촌은 결코 이들에게 안전지대가 아니다. 이들의 행동반경은 난민촌으로 제한되어 있는데 그 대부분이 외부에서 접근이 불가능한 외딴곳에 고립되어 있으며, 강도·강간·기타 끔찍한 범죄의 무대가 되어있다.

난민촌을 벗어나 서구 국가에서 운 좋게 망명처를 구했다 할지라도 이들이 겪는 사회·경제적 차별과 죄과 없는 체포와 구금은 인간다움을 부정한다.

어떻게 하면 이들에게 다시 지붕을 올릴 수 있는 힘을 줄 수 있을까?

94년 아프리카난민조약 제정 25주년을 기념하여 열린 심포지엄은 다음과 같은 방안들을 내놓았다.

첫째, 근본적인 난민발생원인을 차단해야 한다. 이를 위해선 시민사회의 불안을 초래하는 모든 요인들이 검토 되야 하며, 대중적 민주 정치를 실현해야 한다. 국민 대다수가 떠나버린 텅빈 국토를 다스리고 있는 아프리카 국가들의 현실은 식민지 착취와 그에 뒤따른 극심한 계급간 격차와 정치불안의 결과이기 때문이다.

둘째, 무력갈등 상황하의 시민들을 보호하기 위해 인도주의법의 원칙과 규범은 존중되야 한다.

셋째, 난민입국을 저지하려는 국경 패쇄조치는 있어서는 안된다.

넷째, 난민귀환에 있어서 자발성이 철저히 존중되야 한다. 귀환여부를 그들 스스로가 판단할 수 있도록 필수적인 정보가 제공되야 하며, 귀환결정에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 일시적으로 귀환한 난민이라 하여도 원조계획에서 배제되어서는 안된다.

다섯째, 난민이 정상적인 생활을 회복할 수 있도록 가능한 조치를 다해야 한다. 난민의 본국귀환이 불가능한 상황일 때는 타국에 재정착하는 것이 유일한 방법일 때가 있다. 그러나 그 문은 점점 좁아지고 있다. 어느 국경선 안에 있던간에 인간다운 처우와 보호를 받아야 한다는 원칙은 새 지붕을 올리기에는 너무 약한 기둥일까?


류은숙 교육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