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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중국으로부터 자유, 독립 선포

3월10일 제38회주년 티벳의 날


59년 3월10일은 티벳인들이 중국에 대항하여 티벳의 자유와 독립의 열망을 선포한 날이다. 이때부터 티벳인들은 이날을 기념해 왔다. 「티벳청년회의」는 올해를 전세계 티벳의 날로 기념하며 작년 7월 실종된 겐둔 초에스키 니마(제11대 판첸 라마, 판첸 라마는 티벳 제2의 영적지도자를 말함)의 안전보장과 석방촉구를 비롯해 중국정부가 과거 43년간의 가한 물리적, 정신적, 종교적 박해를 알리기 위한 대규모 편지쓰기운동을 벌이고 있다. 간략히 티벳의 날의 중요성에 대해 살펴본다<편집자주>.

중국은 49-50년 티벳을 침공했다. 적은 규모의 티벳군으로는 역부족이었고, 티벳은 국제사회에 도움을 요청했지만 어떤 도움도 받질 못했다. 결국 홀로 중국을 대응하게 된 티벳은 악명높은 17개 조약, 즉 51년 베이징에서 있었던 티벳주권을 중국이 간섭할 수 있도록 강요된 조약에 서명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티벳 동북지역과 동부에 대해 날로 증가하는 중국의 압력은 그 지역 티벳인들로 하여금 무장저항을 하게 한다. 이것은 곧 전국으로 확산되었다.

Amdo, Khamo에서의 탄압과 저항은 수천명의 티벳인들을 비교적 안전한 중앙 Tibet과 Lhasa로 피난시켰다. 티벳정부에 대한 중국의 거만한 태도에 분노한 티벳인들은 동티벳에서 피난온 사람들로부터 티벳 라마와 승려들의 죽음, 사원의 파괴에 대한 이야기를듣고 더욱 분개했다. 이는 중국에 대한 공개적 비난으로 나타났고, 수만명의 티벳인들이 59년 3월10일 Lhasa의 거리로 티벳의 독립을 외치면서 뛰쳐나왔다.

이 3월10일 항쟁은 티벳에서 중국의 폭정과 점령의 제거를 목적으로 한 티벳민중들의 동시다발적 저항이었다. 이틀 뒤인 3월12일에는 티벳의 여성들도 Lhasa의 거리로 나왔다.

이렇듯 티벳 전역에 버섯처럼 뿌려진 저항운동은 저지할 수 없었다. 중국측 집계에 따르면 8만7천명의 티벳인들이 중앙티벳에서 중국 인민해방군의 점령에 저항하다가 죽었다고 한다.

3월10일 항쟁은 달라이 라마와 그의 정부요원과 8만명의 티벳인이 인도, 네팔, 부탄등지로 이동을 가져왔다. 인도에서 달라이 라마는 티벳정부를 재건했다. 그 정부는 세계 어느 나라도 인정하지 않지만 티벳 내외에서는 정통정부로 인정을 받고 있다. 히말라야 중턱에 있는 북부인도에 있는 Dharamsala의 기지에서부터 티벳정부는 달라이 라마의 지도 아래 티벳에 대한 중국의 계속적인 점령에 대한 비폭력적인 저항을 계속해 왔다. 이 저항운동은 티벳인의 자유에 대한 세계운동을 포함하고 있다.

중국이 59년 3월10일 항쟁을 진압하는데는 3일밖에는 걸리지 않았지만, 모든 티벳인의 가슴에서 계속 불타는 그날의 정신을 진압할 수 없었다. 59년 8만7천명의 티벳인들이 죽었고, 이후 9년동안 1백20만명의 티벳인들이 중국의 티벳 점령으로 죽었다. 티벳인들은 그들이 어디에 있든지 매년 3월10일을 기념한다. 그들의 죽음은 자유, 독립, 티벳의 탄생을 위한 정당하고, 가치있는 희생이었다고….

<자료제공: 진보정치연합 국제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