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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자료> 고애순씨 옥중 편지

자나 깨나 뱃 속의 아기 걱정


<편집자주> 지난 2월5일 아기를 사산한 고애순씨 사건이 본지에 보도된 뒤 사회단체들과 언론사에서 이 문제에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여성 수감자의 모성 보호라는 측면에서 고씨의 사건을 계기로 여성 수감자에 대한 인간적인 처우가 보장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이에 고씨가 광주교도소 수감중 남편에게 보낸 편지를 입수, 발췌 게재한다.

우리 아기에게 매일 아빠 이야기를 전할 때면 대책 없이 치밀어 오르는 울음을 삼키기 위해 숨을 정지해야 합니다. 당신과 우리 아기를 생각할 때마다 모든 것이 희망스러우면서도 한편 모든 것이 실제보다 힘들어지기도 합니다. 매일 이 고비만 넘기면 당신과 나, 그리고 곧 태어날 우리 아기가 누구보다 행복한 가정(그런 표현만으로는 너무 부족한)을 가꿔갈 수 있다고 약속해 보지만 지금이 훌쩍 뛰어넘어지지는 않는게 사실입니다.

저는 알다시피 처음에 열과 부기 때문에 고생을 좀 했어요. 헌데 어제부터는 열도 내리고 몇 겹씩 벗겨지던 얼굴도 괜찮아졌습니다. 방에 난로도 들어왔고요. 신장 때문에 특히 겁났던 임신중독증을 피하기 위해 짠 음식을 싱겁게 먹는 등 노력 많이 하고 있습니다. 며칠 동안 잘 느껴지지 않던 태동도 형태는 좀 달라졌지만 다시 느껴지구요. 제일 심각한 고민거리였던 변비도 오늘부턴 좀 잡혀가고 있습니다. 시간만 나면 우유, 요구르트, 땅콩을 먹어댔거든요. 지난 검진이 20일이었는데 어제 체중을 재어보니 1kg 밖에 늘지 않았더군요. 그래서 좀 걱정이 됐습니다. 아이가 스트레스를 너무 받은 게 아닌가 하구요. 먹을 수 있는 것은 최대한 찾아먹고 있으니 너무 걱정 마세요.

곧 검진을 한 번 받았으면 싶은데 어떨지는 모르겠어요. 오늘 이의원을 비롯해 몇 분이 면회를 오셔서 당신네 딸같이 걱정을 하시며 곧 병원을 한 번 갈 수 있도록 힘써 보겠다고 하시더군요. 우리 아가에게도 늘 말하지만 당신과 나같이 착하고 열심을 내어 살았던 사람들에게는 반드시 행복이 찾아질 겁니다. 당신, 다른 생각 말고 내 출산 준비 원래 계획대로 꼭 해주셔야 합니다.

검찰에선 아직 기소를 안한 것 같아요. 공소장이라는 것이 어차피 구속영장과 별반 차이없이 제출되어 왔지만 이번에도 조사내용과 상관없이 작성된다면 정말 화가 날 것 같아요. 당신도 알다시피 내가 내 감정을 쉽게 드러내거나, 특히 나쁜 감정일 때에는 되도록 표현않고 돌려서 표현하는 데에 익숙한 사람이라 나 스스로도 여겨왔는데 사실과 다르게 무조건 편견을 가지고 진행하는 대화방식에 그만 짜증을 내고 말았죠. 사실을 사실대로 인정하지 않는, 아니 ‘않으려는’ 것에 화가 났던 겁니다. 어쨌든 검취는 조사내용이 어땠던지 간에 제 마음을 아주 심난하고 복잡하게 만들어 사실 그냥 피곤하게 이러지 말고 뭐든지 빨리빨리 끝내버리고 싶다는 생각만 간절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젠 많이 안정이 돼가고 있습니다. 어쩔 수 없는 적응이기도 하겠구요. 우리 아기와 함께 가꿀 수 있는 희망찾기를 시작한 덕이기도 합니다. 당신과 함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곧 어떤 형태이든지 그렇게 되겠지요. 너무 조바심내지 않으렵니다.

95년 12월 19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