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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박충렬 씨가 전국연합에 보낸 편지(발췌)>

무죄 증명 못하면 간첩이 될 수 있다는 초조감이…


이번에 나는 전에 없이 겁을 먹고, 당황스럽고 어찌할 바를 몰랐습니다. 95년 11월15일 새벽 2시경 연행되었을 때에 왜 연행되는지 어디로 연행되는지 전혀 알 수 없었습니다. 쿨쿨 잠을 자다 연행되었고 가서 보니 안기부였고 안기부가 내곡동에 있다는 걸 처음 알았습니다. 그러다 2일 후에 있은 구속적부심에서 나에게 씌워진 혐의내용을 듣게 되고, 이후 안기부에서 제가 무전기 3대를 움직이는, 말하자면 3개의 간첩망을 움직이는 두목같은 사람으로 몰리고 있음을 알게 되고는 나는 더욱더 놀라버렸습니다. 혐의 내용대로 하자면 나는 89년부터 포섭되어 교묘한 활동을 한 고정간첩이고, 그것도 3개의 망을 움직이는 대규모 간첩단 두목이라는 것입니다.


무전기 3대와 간첩단 두목

안기부 수사관들의 말이 황인오라는 사람이 무전기 1대를 움직였고, 이선실이라는 사람이 무전기 2대를 움직였는데 너는 3대이니 안기부 창설이래 최대의 사건이라는 겁니다. 그리고 잘해야 무기일 것이라는 겁니다. 내가 아무리 생각해봐도 혐의내용이 사실이라면 나는 그렇게 될 것입니다. 아니 혐의내용의 사실여부를 떠나서 내가 알고 있는 그간의 수사, 재판관행, 안기부의 악명, 끊임없이 상상되는 내가 무죄임을 입증하지 못하면 나는 최소한 무기징역에 처해질지 모른다는 생각이 나를 공포감에 밀어 넣었습니다.

그러다보니 내가 왜 무죄인가를 증명해야겠다는 압박감이 들게 되고, 안기부를 어떻게 하면 이해시킬까 그것만이 머리를 감쌌습니다. 있는 말, 없는 말 횡설수설하였습니다. 합리적 사고도, 판단력도, 의연함이나 당당함도 다 잃어버리고 고양이를 만난 생쥐, 호랑이를 만난 사슴이 되어 버렸습니다. 안기부의 고도의 수사기법과 수완에 내 무지와 공포감이 가미되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어처구니없는 생각이지만 나는 안기부원들이 내가 오랜 기간 무전기를 사용해 왔고 이번에 김동식이 헌 무전기를 새 무전기를 바꿔주려 했다는 말을 듣고 무전기에 내 이름이 써 있거나 아니면, 무전을 주고 받을 때 내 이름으로 주고 받은 게 있는 모양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말하자면 나도 안기부를 실체적 진실을 발견하기 위한 동반자, 나를 거대한 간첩혐의에서 구원해줄 사람들로 인식하였습니다. 2-30명의 수사관들이 번갈아가면서 1초도 쉬지 않고 퍼붓는 말들, 추궁들, 안기부의 입장을 수십 수백번 듣는 과정들에다 안기부에서부터 내 혐의를 벗어야지 그렇지 않으면 내 삶은 무죄냐 무기냐의 극에서 극을,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선에서 확률로 되어 버린다라는 압박감이 같이 가세해서 뒤죽박죽이 되었습니다.


사람이, 세상이 무섭다

무전기, 간첩, 북한, 안기부, 공작원, 김동식 생각하기도 싫은 단어들이고 듣기만 해도 가슴이 덜컥거립니다. 사람이 무섭고 세상이 무섭습니다.

이제 50일간의 조사가 다 끝나고 기소되었습니다. 잠도 자고, 신문도 보고, <말>지도 보니 일상적 사고와 판단으로 돌아오는 듯한 느낌입니다.

나는 지금 두가지 생각을 합니다. 내가 20년 전, 아니 10년전에 연행되었더라면 아마도 완전히 간첩으로 낙인찍히고, 내몰려 허우적거리고 있을지 모르는데 이 정도라도 된 것은 세상이 좋아진 덕분이므로 다행이라고 안도해야 하는 것인지, 아니면 문민정부라는 시대에 간첩말만 듣고 무고한 사람을 파탄내고 그 고생을 시키더니 한 번 잡아온 사람, 어떤 혐의라도 씌워서 이렇게 기소를 하는 게 말이 되느냐라고 생각해야 할지 혼돈스럽습니다. 더불어 나는 간첩이 조작될 수 있다는 것을 확실히 느꼈습니다.

여기 생활, 내 건강 등은 전혀 걱정하지 마세요. 잘 지내고자 마음 먹고 있으니까요.

96년 1월4일
서울 구치소에서 박충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