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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국제인권협약'은 더 이상 외교적 장식품이 아니다

<인권하루소식>이 최근 입수한 바에 의하면 유엔인권위원회 산하 '자의적 구금에 관한 실무분과'(Working Group on Arbitrary Detention)는 황석영·최진섭·이근희 씨의 구속이 자의적 구금에 해당한다고 결정 내렸다.

실무분과는 황 씨 등이 세계인권선언 19조와 '시민, 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협약'(B규약) 제19조 '표현의 자유'에 대한 권리를 행사했다는 이유만으로 형량을 받은 것이 명백하다고 보았다. 이 결정과 함께 실무분과는 "한국 정부가 문제해결을 하는데 필요한 조치를 취할 것과 세계인권선언과 시민·정치적 권리의 원칙 및 조항을 준수할 것"을 요구했다. 91년도부터 설치된 실무분과는 자의적 판단이나 국제인권기준과 일치하지 않는 방법으로 구금이 일어난 사건에 대해 조사하는 책임을 갖는데 정부나 정부간 조직, 민간단체, 개인도 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

우리는 권위 있는 유엔인권위원회 실무분과의 결정이 93년에도 한국정부에 내려졌던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바로 85년 '구미유학생간첩 사건'으로 구속된 황대권 씨와 김성만 씨 그리고 87년 '정치권침투 간첩 사건'으로 구속된 장의균 씨가 자의적 구금에 해당한다는 결정을 내린 사실이다. 유엔인권위원회의 강제적 집행력이 없다는 점 때문인지는 몰라도 우리나라 정부는 아직까지 그 결정에 대해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심지어 이번 조사과정에서 실무분과의 협조요청에 대해 비협조적 태도를 보이기까지 했다고 한다. 이러한 사실은 대한민국의 국민임을 부끄럽게 만든다.

9일 한국정부는 고문방지협약에 가입함으로 범세계적 인권조약에 대부분 가입하게 되었다. 그러나 인권조약을 실천하는 과정이 아직까지 없었다. 적극적 실천의지를 기대하기는커녕 인권조약이 국내적으로 실천되기 위해 기초가 되는 홍보조차 제대로 하고 있지 못한 실정이다. 가입만하고 사장되는 조약이 아니라 국내인권상황 개선의 실질적 지렛대 역할을 할 수 있도록 그 실천방안이 강구될 필요성이 제기된다.

세계인권선언이나 각 국제협약은 인권에 대한 무시와 경멸이 인류양심을 짓밟던 시대를 거쳐 힘들게 이룩한 결과물이다. 따라서 우리정부가 시민·정치적 권리나 사회·경제·문화적 권리 등 국제협약에 가입했다는 사실은 그 내용을 인정하고 따르겠다는 인권실현의지의 표명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번 사건에서 우리는 정부가 협약가입을 단지 외교적 행위만으로 보는 것이 아닌가는 의구심을 들게 한다. 그러나 적어도 국내 최고의 상위법인 헌법에는 "일반적으로 승인된 국제법규는 국내법과 같은 효력을 가진다"고 되어 있다. 국제화, 세계화를 얘기하는 이때, 인권의 기준을 세계적 수준으로 발맞추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것은 또한 상식적인 얘기가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