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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안기부 프락치 배인오(본명: 백흥용)씨 양심선언 자료요약

안기부의 조종-프락치 공작-‘간첩’의 탄생


<김삼석 남매 간첩 조작의 진상>


배인오씨 약력

1966년 서울 출생
1982년-1985년 노동자 야학으로 중 고등학교 졸업
1989년 박종철 열사 기념사업회 선전 부에서 일함
1989년 말 한겨레 영화제작소 근무
1991년 남누리영상 창단대표
1991년 16mm 영화 “이름 없는 영웅들” 시나리오 및 연출
1993년 노동자대학 수료


<양심선언까지의 경위>

(전략)
또한 7월말(93년)에 만났던 조청 조직원들을 다시 만나고 13일만에 귀국했습니다. 귀국하여 일본에서 접촉한 사람들과 정인숙 씨가 일본에서 만났던 사람들을 보고하였으며……본인이 안기부직원들과 합숙하며 2일동안 보고문을 작성한 곳은 마포구 불교방송국을 바라보면 바로 오른쪽에 있는 오피스텔 303호 비밀안가입니다.

세 번째 도일시의 내용을 말씀드리면, 과장의 ‘국내 사민청 청년단체와 일본 조청단체가 연결할 수 있게끔 니가 직접 가서 해봐라’라는 지시를 받고 93년 1월경 도일하였습니다. (중략) 14일 후 귀국하여 안기부 요원 3인에게 또 다시 이틀동안 조사를 받았습니다. 그 조사과정에서 과장은 ‘사민청과 조청이 연결만 되다면 너는 윗 분들한테 큰 칭찬을 받을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이 무렵 본인은 안기부로부터 암호명과 고유번호를 지정 받았는데 암호명은 ‘진달래’, 고유번호 ‘7353’이었으며 고유번호를 호명할 경우 ‘53’이라 말했습니다.

이후 5월초(93년)에 안기부 과장으로부터 또 다른 지시가 내려갔습니다. ‘한총련과 조총련과 연결이 되어 있는 것을 우리들이 확신할 수 없지만 정확한 증거가 없으니 그걸 네가 해야 된다. 네가 영화운동을 하니 어떻게 해서든 조총련계 영화단체를 찾아가 북한영화를 입수하여 그 영화를 한총련에서 보급하겠다고 말하고 국내로 들여 오라’는 지시였습니다. 그래서 본인은 도일하여 조총련계 영화사업가를 만나 북한영화를 입수하여 본인이 2편을 가져오고 4편은 인편으로 부쳐달라고 말한 후 귀국했습니다. 역시 안기부(비밀안가)에서 이틀동안 조사 받으며 인편으로도 영화 4편이 오기로 되어있다고 말하자 과장이 말하기를 ‘김은주를 통해서 그 영화를 건네 받게 만들어라’라고 지시했습니다. 또한 ‘영화가 도착하면 김삼석한테도 북한영화를 소지하게끔 하라’고 말했습니다. 일본 조총련계 영화사(씨네 까론-서편제 수입업체)에서 일본사람을 통해 보내준 이북 영화를 김은주 씨와 함께 가서 건네 받은 후 안기부의 지시대로 김삼석 씨한테도 이북영화를 주었습니다.


“하루 속히 사건을 하나 만들어야 한다”

얼마 후 93년 7월, 안기부의 과장으로부터 또 다른 지시가 내려왔습니다.

‘김정일 영화예술론’을 한총련 간부에게 전달하여 보급하게 하라는 지시내용이었습니다. 그 지시대로 한총련 문화부 사람을 만나 ‘김정일 영화예술론’을 건네주고 보고하자 과장은 ‘김은주가 며칠 후에 일본으로 들어갈 것 같으니 네가 김은주를 통해서 일본에 심부름을 시켜라’라고 지시를 했습니다.(중략)

김은주 씨가 이 영화사업가에게 테이프를 전달해준 며칠 후 안기부 과장은 본인에게 ‘지금 너와 내가 곤란한 처지에 빠져있다. 하루속히 사건을 하나 만들어야 한다. 이번에 대상은 김은주와 김삼석이 가능하다. 그러니 네가 잘해주기 바란다.’라고 말하였습니다.


“김은주와 연결시켜라”

이후 7월말 경 또 다시 안기부 과장이 지시를 했습니다. ‘이번에 일본에 가면 조총련계 영화사업가한테 어떻게 해서든지 이북 관련된 책을 보내달라고 말하고 그 책을 건네 받는 사람을 김은주하고 연결시켜라’라는 내용이었습니다. 이후 본인이 일본에 가서 안기부의 지시대로 조총련계 사업가에게 책을 보내달라고 부탁한 후 김은주의 이름과 전화번호를 알려주며 이 사람한테 책을 전달해주라고 말했습니다.

10일 동안 일본에 있다가 귀국하여 일본에서의 공작내용을 과장한테 잘 되었다고 설명하자 그는 수고했다며 ‘이번 일만 잘 성공시키면 윗 분들이 너에게 장가갈 밑천으로 집 한 채의 포상이 있을 것이다’라고 말하였으며 김일성 10대 강령 등 몇 북한 관련 책자를 본인에게 주며 김은주를 통해서 한총련 간부에게 전달해주게끔 하라고 지시했습니다. 또한 가능한 한 김은주와 한총련 재 정국은 연결시키라는 지시도 있었습니다. (중략).


치밀한 공작의 성공(?)

과장으로부터 또 다른 지시가 있었습니다. 지시내용은 ‘이번(93년) 범민족대회 때(중략) 한총련과 함께 상영하는 기회를 가져봐라, 가능하다면 한총련이 이북영화를 상영하는 주체로 만들도록 하라’는 것이었습니다.(중략) 그래서 안기부의 지시대로 범민족대회 때 이북영화를 상영하게 되었습니다.

9월 8일 안기부 과장이 아침에 본인을 불러내어서 김은주 씨가 근무하는 강남터미널 앞에 지하다방에서 만났습니다. 과장이 말하기를 일본에서 심부름하는 사람이 책을 갖고 오는데 조금 있으면 김은주가 나갈 것이다. 김은주가 너한테 삐삐를 치면 연락하지도 말고 김은주 혼자 나가게 하라는 내용이었습니다. 오후 1시쯤 되자 안기부 요원이 다방으로 들어와 일이 잘 되었다고 과장한테 말하자 저에게 남누리 사무실로 돌아가서 기다리고 있으라고 말했습니다.

다음날 아침에 과장으로부터 또 연락이 왔습니다. 남산 안기부 밑에 크리스탈 다방(안기부 요원들의 비밀다방, 안기부가 운영하는 다방)에서 과장을 만났습니다. 과장이 저에게 말하기를 ‘김은주를 어제 현장에서 체포했다. 그런데 김은주가 모두 니가 시켰다고 자꾸만 말하니까 너는 잠시 직원과 함께 피신해 있어라’. 그 이후로부터 과장 말 대로 안기부 직원의 도움을 받아 피신해있기 시작했습니다. 여기까지 한총련과 김은주, 김삼석 남매 간첩단 조작사건 내용의 전부입니다.(후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