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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가의 편지

안녕하세요, 달과입니다.

안녕하세요. 얼마 전부터 인권운동사랑방 자원활동가로 활동하게 된 달과(활동명)라고 합니다. 이번 소식지에 활동가의 편지를 써줄 수 있겠냐고 부탁받았는데 무엇을 써야 할지 갈피가 잡히지 않아 대충 저의 소개와 근황, 고민에 대해서 써보도록 하겠습니다.

제가 인권이라는 이슈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된 건 16살 때입니다. 강남역 여성혐오 살인사건이 일어난 해였는데 그 당시에는 사건에 대해서도 잘 알지 못했고 그 사건을 사회구조적인 시각에서 바라보는 법도 몰랐습니다. 그냥 주류의 흐름을 비판할 겨를 없이 따라가며 나름대로 치열하게 사는 사춘기 청소년이었습니다. 그러던 중 한 친구를 알게 되었습니다. 좋아하는 아이돌 그룹이 같아 친하게 지내며 이런저런 말을 하게 되었고 ‘페미니즘’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방어적인 태도를 가졌던 것 같습니다. 비판이 나에 대한 공격처럼 느껴졌습니다. 친구는 답답해하면서도 저를 기다려주었습니다. 시간을 두고 생각해보니 페미니즘의 시각이 논리적이고 당연한 귀결이라는 판단이 들었고 더 알아보기로 했습니다. 그 뒤 여성학 서적을 찾아보면서 페미니즘의 논리와 언어를 학습하게 되었고 저의 인식체계가 상당히 큰 변화를 맞게 되었습니다. 17살부터는 스스로를 페미니스트라고 여기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교차성에 대해 사유하면서 성소수자, 장애인, 외국인, 노인, 아동-청소년 등의 인권과 동물권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구조적 문제가 심각하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활동을 시작하게 된 직접적인 계기는 대학교 입학 이후 가입한 페미니즘 독서모임에서 알게 된 한 친구 덕분이었습니다. 이 친구의 제안으로 페미니스트 동아리 활동을 하기 시작했고 지역에서 학생운동을 하는 단체를 알게 되었고 여러 가지 지향이 맞아서 학생운동단체와 정당에 가입을 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인권에 대한 섬세함은 부족하다고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조금 더 결이 맞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던 와중에 인권운동사랑방이라는 공간을 우연찮게 알게 되었고 자원활동에 지원하게 되었습니다.

어제는 몇 년 만에 만난 친구들과 ‘임신한 나무와 도깨비’라는 독립영화를 보았는데 미군 위안부에 대한 내용이 나왔습니다. 다큐멘터리와 극이 혼합된 형태이고 그 경계가 확실치 않아 대사라고 칭해야 할지 그냥 말씀이라고 창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미군 위안부였던 박인순 씨가 자신은 자기가 좋아서 몸을 팔았다, 지금도 할 수만 있다면 몸을 팔아서 돈을 벌고 싶다고 하는 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함께 본 친구는 그 말이 왜 몇 번이나 나왔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며 그 부분이 별로였다고 하였는데 저는 오히려 좋았습니다. 창녀를 오롯한 개인으로 보지 않고 그저 피해자로만 보는 시선을 저는 폭력적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주류의 시각에서 성애화되지 않는 몸을 가진 늙은 여자의 당당한 모습이 저는 너무 좋았습니다.

최근에 분단모순 문제와 민중운동에 관심을 가지게 되어서 역사 공부를 하려고 세계사 책을 찾아보다가 ‘민중의 세계사’라는 책을 알게 되었는데 지배계급의 역사에만 매몰되지 않고 민중의 삶을 서술하는 책이라는 점에서 일반적인 세계사 서적보다 흥미가 생기는 것 같습니다. 아직 초반부를 읽는 중이라 적극적으로 추천하지는 않겠지만 이런 책이 있다는 것 정도 알아두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2월이 되면서 복학과 개강을 내가 감당할 수 있을까에 대한 걱정이 커졌습니다. 만성적인 우울로 인한 무기력과 집중력 저하 때문에 휴학을 했던 것인데, 학기 중보다는 괜찮은 날이 눈에 띄게 많아졌지만 그래도 불쑥 찾아오는 무기력과 자살사고는 스스로에 대한 믿음을 없애버립니다. 개강을 하기 전까지 남은 기간 동안, 어떻게 정신병과 공존하며 일상을 이어갈 수 있을까, 어떻게 세상과 불화하며 절망을 버틸 수 있을까에 대해 고민하면서 지내봐야겠습니다.

다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