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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그대다그대

내 인생의 주사

가원

유년시절 주사바늘에 대한 공포는 실로 엄청났다. 소아과를 찾아 주사를 맞은 날은 어김없이 패닉 상태로 모친 등에 업혀 병원을 빠져나왔었다. 나는 그때에 비하면 주사를 잘 맞는다. 나를 거뜬히 업을 사람이 없으므로.


아해

지금의 나를 보시는 분들은 좀 상상하기 어려울 수도 있겠지만(잘 컸다, 아해! ^^) 주사 맞을 때 병원 전체를 뒤집어 놓을 만큼 악을 쓰고 울어 제끼는, 지금 생각해보면 참 진상 어린이였다. 그래도 겁은 많아서 주사바늘이 들어가고 나면 내 몸 안에서 잘못될까 무서워서 움직이지도 못했다. 바로 그날도 의사쌤과 엄마 사이에 내가 주사 맞는 분위기가 슬슬 형성되길래, 반쯤 일부러 울면서 널브러지기 시작했는데, 한 5분쯤 으아악 악을 썼나. 엄마가 “오늘은 주사 안 맞아도 되면 안 맞아도 될까요?”, “네, 안 맞아도 됩니다.” 허걱. 허탈함과 피로, 민망함. 안도감, 애정과 신뢰. 그 이후로 주사 맞을 때 진상 짓은 딱 그만두게 되었다.


민선

독감 예방주사를 챙겨 맞기 시작한 지 몇 년 됐다. 작년은 코로나19 때문에 더더욱 독감 예방주사를 맞으라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마침 건강검진을 받는 병원에서 이벤트로 예방주사 할인을 해준다고 연락이 왔다. 그러고 보니 예방주사 가격이 병원마다 달라서 어느 지역 어떤 병원이 싸더라 하는 글들을 인터넷에서 보곤 했는데, 왜 가격이 다른 건지 의아하면서도 할인 소식에 냉큼 예약을 했다. 최근 병원 앞을 지나다 대상포진 예방주사 홍보 현수막을 보았는데, 눈이 갔다. ‘예방’이라는 게 어디까지 가능할지 모르겠으나 나이가 들수록 면역력이 떨어진다고들 하니 점점 더 혹해진다.


정록

주사 맞는 것에 대한 두려움은 별로 없다. 조금 묘한 기분이 들기도 하는데, 링거액이 주사바늘을 통해 내 몸으로 들어오는 것도 묘하고, 높낮이가 달라져서 내 혈액이 수액관으로 들어갔다가 다시 들어오는 것도 묘하다. 주사바늘은 내 몸과 외부와의 경계를 흐리는 잇는 신묘한 물건이라는 생각도 든다.


디요

어릴 때 주사를 무서워했다. 그런데 엄마가 병원에 데려가기 위해서 거짓말로 주사 안 맞아도 된다고 하며 데려갔다. 하지만 주사는 여지없이 맞았고 그때부턴 주사보다 거짓말에 너무너무 억울해서 울었다. 엄마가 부끄럽다며 병원 뒤편으로 나를 데려가서 눈물 나지 않도록 혼을 냈다. 역시 주사는 그 작은 바늘 자체보다 주사가 불러오는 어떤 공포가 문제다.


어쓰

주사와 관련한 괴담을 들은 적이 있었던가, 없었던가. 바늘이 몸 속으로 들어가 여기저기 돌아다닌다던지, 실수로 공기가 주삿바늘을 통해서 몸에 들어가면 혈관이 어떻게 된다던지. 내용은 생생하지만 말하거나 들은 기억은 없는 걸 보면 유년기의 내가 주사에 대한 공포심으로 만들어낸 이야기였나 싶기도 하다. 이제는 괴담 때문에 주사를 무서워하지는 않는다. 조금 꺼려지는 마음은 여전하지만.


5년 전 독감에 걸려 3일을 꼼짝없이 몸져누웠던 경험 때문인지 매년 10월 정도가 되면 독감 예방접종을 잊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그러다 2년 전에 정신이 없어서 초반 접종시기를 놓치는 바람이 다시 또 독감에 걸렸지만… 이제 독감에서만큼은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인간이 되지 않으려 노력한다. 면역력이 약해진 것 같은데 (잘 먹고 푹 쉬라는 말에 네네 영혼 없이 대답하는 나 같은 환자에게) 병원에 와서 비타민D 주사를 맞으라는 주치의 선생님의 최근 전언이 떠오른다. 다시 주사 맞으러 갈 타이밍.